정말 조용한 밤
정말 조용한 밤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1.11.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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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형광 녹색이 그리 선명한지 처음 알았다.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 별들이 큼직한 반짝임으로 빛났지만, 검은 먹색의 저수지까지 빛을 쏟아내지는 못했다. 막막하기까지 한 어둠 속에서 오로지 형광 녹색의 `낚시찌'만 살짝 잔물결에 흔들린다. 녀석들은 떡밥 뭉치 속에 예리한 바늘을 꼭꼭 숨겼는데도, 마치 놀이하듯 떡밥만 툭툭 건드려 흩트리곤 유유히 사라진다.

낚시가 처음이라는 서 선생님이 화들짝 놀라 건져 올린 낚싯바늘엔 비닐 뭉치가 덩그러니 올라온다. 나도 그렇고 낚시 초보자는 떡밥을 뭉쳐 저만치 던지기도 쉽지 않다. 재잘재잘 훈수하듯 낚시에 대한 철학을 읊조리며 낚싯대를 설치하는 조 선생님은 평소처럼 낚시터에서도 정말 부지런하다. 또 낚시에 대한 이론도 나름 깊어 보인다.

저수지 풍경은 어둠이 내리기 직전이 가히 압권이다. 앞산은 이미 검은색 실루엣 덩어리로 단순화되었고, 아직 조금의 빛을 머금은 하늘은 저수지에 그대로 투영된다. 이로 인해 저수지는 수평선을 중심으로 정확히 아래위 반을 나누어 두 개의 화면을 맞대고 있다. 그 위에 낚싯대 서너 개 던져 놓으니 거기가 물 속인지 하늘인지조차 구분이 어렵다.

지금부터는 기다림의 예술! 각자 자리를 잡고 물끄러미 녹색 막대만 바라본다. 요즘은 유난히 밝은 녹색이 있는데, LED로 빛은 밝히는 것이란다. 예전 전통 형광빛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사실 나는 낚시에 별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어둠, 적막감, 그리고 마음 통하는 멋진 친구다. 더불어 낚시꾼들이 말하는 `손맛'을 전혀 느껴보지 못하더라도, 수프만 넣은 따끈한 라면 한 코펠이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우리 일행도 낚싯대를 내려놓고 다들 모여 종이컵을 그릇 삼아 연신 후루룩후루룩 “캬~”하고 막내가 끓인 라면 맛에 감탄사를 내뱉는다.

서 선생님의 눈이 또다시 번뜩인다. “또 비닐봉지 잡은 거야?” 선배들의 놀림을 뒤로하고 낚싯대를 들어 올리더니 고함을 지른다. “잡혔어요~”서 선생님 외마디에 모두 젓가락을 던지고 몰려든다. “와~ 뜰채 뜰채~”뜰채로 걷어 올린 참붕어가 손바닥보다 크다. “호호호 ~ 와우” 이런 게 항상 묘미다. 뭐든 처음인 사람이 꼭 이런 대형 사고를 친다. 그래도 막내가 손맛을 제대로 봤으니 참 다행이다.

1박 2일 일정으로 예약했지만, 새벽이 다가오며 다들 철수를 준비한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금요일 밤을 정리하고, 황금의 토요일을 맞이해야 하니까.

일행을 보낸 후, 나와 조 선생님은 주변을 가지런히 하고 조용히 낚싯대를 향해 자리를 잡는다. 고요하다. 초저녁 살랑대던 가을바람조차 한 점 느껴지지 않는다. 12시가 넘으니 춥다. 작은 가스난로를 켜도 따뜻함보다는 붉은 조명 효과만 준다. 멀리서 가끔 첨벙대던 녀석들도 이젠 잠자리에 들었나 보다. 이 맛이다. 아무 소리도 없다. 살짝 귀를 엘 듯한 추위에 내 몸을 움츠리는 작은 부스럭 소리, 그리고 가느다란 녹색만 어둠 속에 떠 있다. 완벽하다. 더구나 내가 평소 좋아하는 친구 같은 조 선생님이 곁에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함이 어디 있으랴. “조선생 고마워~” “뭐가요?” “그냥~~~”

아주 가끔 첨벙이는 소리가 있었지만 아마도 잠에서 깬 아기붕어들의 잠꼬대였으리라. 그것 말고는 정말 정말 조용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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