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난
행복한 가난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10.05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 말은 법정스님이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글에서 피력한 말이다.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욕심을 내고 결국 자신의 것으로 소유해야만 성에 차는 것이 요즘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물론 나 또한 그렇다. 소유욕을 버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비우고 살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막상 선택의 기로에서는 여지없이 내 것으로 만들고는 후회를 한다.

`맑은 가난', 법정스님의 그 말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아마도 그건 며칠 전 읽은 책 속의 주인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이 책은 방랑자 크눌프의 이야기다. 주인공 크눌프는 작가 헤르만 헤세가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이다. 크눌프는 헤세의 여러 작품 속의 형제이며 작가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는 가진 것은 없지만 세상 어디를 가나 따뜻한 빛을 뿌려주는, 그래서 누구나 그를 만나면 행복해진다. 가난하지만 가난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크눌프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마음이 금세 충만해진다.

크눌프는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 아름다운 꽃과 나무, 하늘과 해, 시골길, 불꽃놀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크눌프》를 읽는 동안 나도 덩달아 몇 번이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했다. 욕심도 없고 집착도 없는 오직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음성만을 듣고 그는 길을 떠난다. 하지만 불행이라곤 없어 보이는 맑은 영혼의 그에게도 아픔이 있다. 크눌프는 열네 살 때 프란치스카라는 여인을 사랑했다. 하지만 욕망이 큰 그녀는 크눌프에게는 너무도 벅찬 사랑이었다. 결국 그녀에게 버림받은 크눌프는 좌절감에 방랑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방랑 생활 중에도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그녀는 아름답고 슬픈 눈을 가진 리자베트라는 여인이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기도 하지만 그녀가 갑자기 죽고 만다. 크눌프는 괴로움에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남의 집에 입양 보내고 만다. 크눌프에게 그 아이는 평생 자신의 가슴에 꽂혀 있는 아픔이었다.

크눌프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삶은 버림으로써 얻어진다'라고 하신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긴 세월 방랑을 하면서 결국 혼자서 자신의 짐을 지고 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욕심도 미움도 욕망도 없는 삶을 살았지만 크눌프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삶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이었는지 의문을 가지며 괴로워한다. 그때 크눌프는 하느님에게서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함께 했었다.'라는 답을 얻고는 편안히 눈을 감는다.

헤르만 헤세가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마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이해와 사랑은 아니었을까. 아무런 직업도 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크눌프가 그토록 맑은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어떤 이는 크눌프의 무책임한 삶의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삶이 현명하며 지혜로운 삶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다른 누군가가 수렁에 빠지거나 좌절감으로 아파할 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크눌프》를 읽고 느끼는 바가 컸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활짝 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등에 짊어진 짐이기에 그 해결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아둔해 달팽이가 집을 등에 지고 가는 것이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머잖아 그 모습도 `행복한'발걸음으로 느껴지는 혜안을 갖는 날이 도래하리라 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