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시시한 일상-북방산 개구리
지극히 시시한 일상-북방산 개구리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09.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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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바쁘다. 정신없다.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아니 몸과 마음은 내일의 몫인데 금요일 저녁부터 밤늦도록 갈피를 못 잡는다. 한두 해도 아닌데 이맘때쯤 금요일은 여전히 식지 않는 불금이다. 금요일 저녁은 신명나는 시간, 모기에 에워싸여도 헤드 랜턴을 머리에 쓰고 손에 잡히는 것은 분간하고, 머리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은 해를 거듭하며 싸인 노하우로 전광석화같이 정리한다. 자정을 넘기고 침대에 누워서도 머리는 돌아간다. 그리고 새벽 새소리 알람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도 청초하게 들리는 새소리, 상쾌한 아침이다.

텃밭과 정원의 경계가 불분명한 뜰의 가을은 너무나도 복잡하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한여름 무럭무럭 자라 가을에 수확한다.

아니 가을엔 소출의 기쁨과 작물별 저장을 위한 여러 보관방법과 장소를 물색하고, 씨를 받고 여름내 보관했던 구근을 파종 하고 무성하게 자란 식물을 분주分株 하느라 분주한 시기다.

수확은 늦어도 노지에서 겨울을 나는 녀석들의 파종과 분주는 시기를 놓치면 좋은 수확물을 얻기가 힘들다. 작물 혼자서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내리는 것도 아니고 뿌리를 내리고도 겨울을 나야 하기 때문에 추위 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흙에 의지한다.

뜨겁게 달궈진 흙은 적당히 열을 식히고 수분도 적절히 유지하고, 잡초뿌리가 만들어낸 넉넉한 공간에 씨앗을 맞이한다. 씨앗은 싹을 틔우기 전 뿌리가 나올 부분으로 먼저 두드린다. 흙과의 만남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열과 수분을 체크한다. 그리고 서늘한 공기에 휩싸인 고음의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뿌리를 내린다. 곧 미생물과 양분이 새로운 만남을 반긴다. 떡잎은 누렇게 변하고 위로 난 잎은 햇빛을 받아들인다. 떡잎을 단 4개의 앙증맞은 손톱만 한 녀석이 어느새 손바닥만 하다. 뿌리는 멀리 있는 양분과 물을 찾아 끊임없이 세포를 늘린다. 삽목을 해도 뿌리를 내린 후에야 순을 틔운다. 기존 줄기에 있던 수분과 양분을 이용한 순은 오래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자라 열매를 달 순은 뿌리가 제대로 나온 뒤다. 제대로 나온 뿌리는 흙과 한 덩이가 되어 있다. 흙은 조력자이자 무한대의 힘, 화수분이다. 흙의 빈자리는 없다. 빼곡하게 무언가는 자란다. 씨는 떨어져도 빈 곳을 메우는 작업을 한다. 가을 흙은 다시 초록으로 갈아입는다.

봄에 만개했던 아이리스가 묵은 잎을 땅에 떨구고 겨울나기 순을 올렸는데, 그 많은 아이리스 중 한 포기에서 흰색의 꽃을 피우고 오월의 향을 담았다. 한여름 풀과 화초와 작물이 뒤엉켜 밀림을 방불케 하던 풍경이 사그라지고 있다. 꽃이 진자리 열매가 달리고 꼬투리가 여문다. 쥐눈이콩 서리태는 서리가 올 때까지 버티고, 성급한 작약은 씨앗을 받기 전 바로 아래 소복하게 쌓고 몇 개는 멀찌감치 보냈다. 그래야 몇 발자국 안 되지만, 네 손가락 오므렸으니 한 손가락 엄지 척인가? 밤에 다소곳이 잎을 오므리고 잠을 청하던 자귀나무는 낙엽도 여러 잎이 모여 가지런히 떨군다. 바스락 소리가 나며 바스러질 것 같아 잎자루를 조심스럽게 쥔다. 비질을 하지 않고 다소곳하게 하나하나 줍는다.

얼마 안 되는 땅에서 흙과의 삶을 사는 것들에겐 일 년의 시간에 질서가 있다. 서로 충돌되는 일이 없다. 그러니 서로 피 터지게 싸울 일이 없다. 고단한 삶에서 버티지 못해 탈락할 일도 없다. 따돌림도 낙오자란 말도 없다. 때가 되면 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틔운다. 자연의 생태계도 나름 경쟁은 있다. 하지만 편법과 음해를 통해 떼거지로 몰아가는 파렴치한 행위는 없다. 얼마 안 되지만 관대하고 지혜로운 흙과 모든 것들이 함께하는 삶이다.

아침저녁으로 어떻게 온 지도 모를 개구리의 짝을 찾는 듯한 울음소리다. 이때쯤이면 동면에 드는 북방산 개구리인데 오토바이 굉음이 끊이질 않고, 소리 없는 편법과 음해가 난무한 살벌한 극한 경쟁의 도심에 나타난 개구리는 어인 등장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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