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시대정신
21세기의 시대정신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9.2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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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현대를 포스트모던(post modern) 사회라고 한다. 근대(modern)사회의 주제가 나(自)였다면 현대 사회의 주제는 다른 것(他)이다. 다른 것은 나(우리) 아닌 것들이다. 곧 (나 아닌) 다른 사람, (나를 포함하는 우리 아닌) 다른 집단 등이 이에 포함된다.

현대에서는 왜 타자(他者)가 중심 주제가 되었을까? 그건 내(自)가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나'나 `우리'를 중심으로 삼아서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타인, 다른 집단, 다른 인종, 다른 성별(sex)들에 대해서 무관심해진다. 자신의 영역에 갇혀 지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청년들이 청약저축에 목을 매는 건 내 문제가 아니다. 내 세상에서는 집을 소유해야 한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에 삶을 걸고 매진하는 사람들(他人)도 이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인문학적 소양 없는 무식한 사람이지만 누릴 걸 다 누리고 살았다. 내가 마초로서 즐겁게 살아왔는데 왜 여성의 관점을 이해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나'나 `우리'가 중심이 되면 자기(우리 집단의 목표)실현이 최우선의 과제가 되고 이에는 타자의 희생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시험에서 낙방하는 사람이 있어야 등과하는 기쁨도 있는 법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싼값에 제공하는 사람이 있어야 떼돈 버는 사람도 있고, 권력 투쟁에서 지는 사람이 있어야 권력을 쟁취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자신'이나 `우리'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면 타인이나 다른 집단에 무관심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을 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은 그 사람 몫을 받으면 되는 거고 시험 붙은 나는 성공을 자축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우리)의 성공은 축하할 일이지 결코 미안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너희도 훌륭한 부모 밑에 태어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자기(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사고는 다른 사람(집단)을 희생시키는 폭력성을 드러내고 타자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이 때문에 현대 철학에서는 자기(우리) 중심의 철학을 지양(止揚)하고 타자(他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타자를 문제의 중심에 두면 어떻게 될까? 이럴 경우, 자기(우리)의 처지가 심히 초라하게 된다. 다른 것들(他者)을 문제의 중심에 두면 그것들이 없다면 자신이 설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곧 자신은 다른 것들에 의존적이며 종속적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성취를 자랑스러워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즐거워하지 않고, 승리를 위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깔아뭉개지도 않는다. 상대가 없다면 나도 없기 때문에 상대를 패배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략을 택할 수 없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나도 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귀는 저절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현대철학에서는 다른 것(他者)에 자기의 문을 열어 자기의 정체성을 반성적으로 해체하고자 한다.

최고 권력을 둘러싼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지면 끝장이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 당연히 치열할 수밖에 없다. 대화와 타협, 염치? 그건 이기고 나서 생각할 문제다. 여기에 타자에 대한 배려나 귀 기울임이 있을 수 있을까? 모두가 느끼겠지만 1도 없다. 21세기에 살면서 근대적 아니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시대정신은 훨씬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는 전근대적 싸움박질을 구경하고 있다. 등장인물들도 그렇고 싸우는 방식도 그렇다.

우리 모두 타자의 등에 올라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시대정신을 읽는 리더는 타자가 목적지까지 실어 갈 수도 있지만 나락으로 내다 꽂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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