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50억이 주는 박탈감
퇴직금 50억이 주는 박탈감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1.09.27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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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화천대유. 중국의 영화 제목 같은 이 말이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국민에겐 명칭도 낯선 이 말은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택지개발 사업을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추진하면서 줄여서 부르는 명칭이다. 
애초 대권주자를 겨냥해 수천억대 개발이익에 대한 의혹으로 화천대유가 거론됐지만, 이제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검찰로도 확산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권력층 자녀가 취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천대유 의혹은 일파만파 커지는 분위기다. 사건의 불을 키운 건 퇴직금이다. 현직 국회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자산관리에 말단직원으로 취직해 6년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 50억이란 사실은 누가 봐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32살의 퇴직금이라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하다 퇴직해도 1~2억 원 받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말단 직원의, 그것도 6년도 채 안 된 근무로 받은 퇴직금이 50억 원이라니, 훼손된 내 노동의 가치에 국민 모두 박탈감과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권력을 가진 부모 덕에 쉽게 취직하고 돈을 버는 소수 계층과는 달리 전국에는 수많은 공무원 준비생들이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시험일에 미래를 걸고 책과 씨름하고 있다. 그들이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이유는 취직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가장 공정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 없고 백 없는 젊은이들이 가장 공정한 룰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공무원에 매달리는 이유다.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퇴직금은 뒷배가 자꾸 그려지는 그림이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고, 아버지의 권유로 회사에 입사했다는 배경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권력층 자녀가 부모의 도움으로 화천대유에 취직하고, 특혜를 받고, 퇴직금을 받(았)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퇴직금 수령자인 곽모씨는 화천대유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은 정당한 대가라고 직접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냉랭하다. 26살에 취직한 말단 직원이 얼마나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을까도 의문이고, ‘오징어 게임 속 말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당사자의 말도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본은 그리 허술하지 않다. 전 세계가 팬데믹이란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우왕좌왕할 때도 가장 먼저 비대면 사회를 준비해 이익을 취한 쪽도 자본이었다. 근무했다는 것만으로 주는 성과급은 자본의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지급된 성과급이란 게 자본의 논리에 가장 합당하다. 
사태가 커지자 국회의원인 아버지는 국민의 힘에 탈당계를 제출해 무소속으로 남으면서 당에서는 어떤 조치도 필요없는 상황이 되었다. 탈당으로 당이라는 우산은 없어졌지만,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탈당과 복당이 다반사이고 보면 그조차 지켜볼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퇴직금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태세다. 온라인 상에서는 퇴직금을 풍자하는 패러디가 속속 등장하면서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로 돌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오십억 게임’포스터가 등장하는가 하면, 국민의 힘 포스터를 ‘아빠의 힘’으로 바꿔 놓은 이미지, ‘화천대유에 취직 못 시켜줘서 미안해’라는 문구까지 온라인 상을 돌며 화천대유를 빗대어 풍자하고 있다. 
웃으면서도 씁쓸하게 만드는 패러디는 공정을 외치고 공평을 외치는 국민의 요구임을 수사기관은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정·경 유착 고리를 끊어내는 사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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