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두 번째
오락가락 두 번째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09.1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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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떨어질 잎이 없네!” “그러게” 겹잎의 등나무가 앙상하게 잎줄기만 남겼다. 끝내 약을 치지 않았다. 쐐기에 쏘이면 어느 정도의 통증인지 물만 닿아도 소스라치게 아리다는 것을 알면서 살충제를 치지 않았다.

커다란 검정 벨벳 날갯짓을 하는 나비, 호랑무늬에 잘 익은 감색을 한 형형색색의 나비가 연신 날아드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갓 허물을 벗고 양손의 조선낫 같은 무기를 `까딱까딱' 점검하는 녀석, 배가 부를 만큼 부른데도 불거져 나온 눈알을 굴리며 또 다른 사냥감을 노리며 옴짝달싹하지 않는 사마귀가 대거 출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잎의 뒷면에 간혹 작살모양의 털만 보이던 소심한 쐐기는 위풍당당 독을 품고 잎줄기로 올라왔다. 앙상한 잎줄기만 남긴 포식자들은 등나무를 점령하고 뜰 안 여기저기로 자리를 이동한다. 간혹 집안으로 침입하는 녀석들은 발바닥에 끔찍하게 압사되기는 하나 많은 녀석이 다른 점령지에 안착했다.

이동하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짤막하고 배는 잔뜩 불렀다. 진노랑에 흰 줄 작업복이 진노랑에 하늘색, 짙은 점점 무늬에 촘촘한 가시돌기로 무장했다. 아이템을 획득하고 레벨업이 되었다. 작업복에서 전투복으로 중무장에 만반의 채비를 마친 녀석들의 움직임은 승자의 거만함 이상이다. 느리기가 한정 없다.

올 늦여름 몇 안 되는 여린 노란 녀석들, 갉아먹는 먹는 소리도 없이 바쁜 운동을 했다. 입 운동. 잎 가장자리에 일렬횡대로 몸을 밀착시키고, 이동거리는 입이 움직이며 녹색이 줄어드는 정도다. 연신 갉아먹으면서 종족 번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녀석들 덕에, 일주일, 보름이 지나 초토화가 되었다. 자족할 줄 모르는 쐐기에 점령당한 등나무는, 어차피 떨어질 낙엽이었다면 남은 잎으로도 충분히 광합성을 해서 연륜을 더 할 수 있다면 그 정도야 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는지도 모른다.

뜨거운 한여름 원 없이 광합성으로 건강해진 등나무가 잎은 앙증맞은 쐐기에게 내주고, 배를 불리고, 색이 더욱 오묘해진 겨울을 이겨낼 화려하고도 두꺼운 옷을 주었다. 쐐기의 답례는 들깨 알 만한 배변을 등나무 주변에 고르게 펴주었다. 그리고 줄기차게 내린 비는 작은 깨알들을 밀어 등나무 뿌리 쪽으로 수북하게 녹색으로 덮었다. 그런 사이 조선낫을 시험하던 여린 녹색의 사마귀는 낫을 키우고 황갈색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블루베리가 익을 때 발견된 쐐기는 나방이 되었다. 그 나방의 유충이었을까? 팽나무, 등나무에 다시 보이던 쐐기를 제거하지 못했다. 나비든 나방이든, 사마귀든 방아깨비든 차마 살충제로 제거하는데 망설이게 된다. 분명 해충인데 익충이 같이 있으니 많이 잡아먹기만을 바라다 결국 구멍이 송송, 너덜너덜해진 볼품없는 작물과 나무와 마주한다. 거미줄은 거하게 치고는 모기 하나 파리하나 잡지 못하고 매번 걸려드는 건 꿀벌이다. 말벌 하나 걸려든 걸 못 봤다. 그래 내년엔 거금을 들여 살충제를 치자. 그래 작년 이맘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약을 못 치겠다면 모기장이라도 씌어서 제대로 된, 벌레 똥이 없는 배추로 김장을 해보자 다짐한다. 그러나 늘 다짐으로 끝난다.

푸성귀 등 식자재는 냉장고에 없다. 먹거리는 늘 텃밭에 있다. 그런데 텃밭은 나만의 터가 아니다. 텃밭의 먹거리는 나만 먹는 게 아니다.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만든 거름을 줘가며 기른 텃밭은 온갖 벌레들에겐 삶터가 된다. 벌레들이 하는 일이라곤 먹어치우고 겨우 똥이나 싸는 거면서, 그렇게 푸념은 할 일이 아니다. 서로 의존하는 것도 충돌할 것도 그다지 없다. 결국, 함께 더불어 사는 덴 삶터와 일터의 경계가 없다. 같이 살기에 생명의 연장과 번성을 같이한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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