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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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08.3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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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들려오는 망치 소리. 못을 박는 타격이 아닌 거푸집을 제거하는 둔탁하면서도 동네 전체로 퍼져 울리는 소리다. 동이 트고 굴삭기 시동 거는 소리와 함께 작업자를 질타하는 고성이 오간다. 소음이 전주가 되는 시간이 요즘 하루의 시작이다.

집의 방향이 서쪽이지만 초등학교 옆이라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재밌다. 놀이터와 아이들이 기르는 조그만 텃밭이 있어 아이들이 움직임을 즐기는 좋은 전망이었는데 보름 넘게 시공한 곳을 파고 다시 되메우기를 반복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소음에 짜증이 차올라올 만큼 올라오고, 새벽 창을 넘는 서늘한 공기가 홑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는 기분에 창문을 절대 닫을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직 새벽이 오지 않은 것인지? 아님 어젯밤 알라딘의 `지니'가 다녀간 것인지? 분명 날은 밝았는데 말이다.

이유는, 온종일 “다다다다~ 다다다닥~!'”콘크리트 바닥을 해체하는 브레이커의 소리 대신 “두두두두~ 두두두둑~!”빗소리다. `비가 오면 외부 현장 일을 하지 않지!'왜 갑자기 기분이 밝아지는 것일까? 온 가족이 비를 반긴다. 분진발생과 소음에 따른 가림막이 없고, 설계도면이 잘못된 것인지 작업속도가 더디며 작업자들 간 작업이해가 다른 양 고성이 하루의 시간을 채웠는데, 학교공사라 뭐라 할 수도 없는데 이 무슨 기쁜 일인지? 더구나 가을장마란다. 아니지. 공사가 더 늦어지면 아이들이 더 힘들 텐데.

이제 떨어질 만큼 떨어졌을 텐데 중량감이 더해진 감나무 열매가 여전히 높은 곳에 있길 거부한다. 더군다나 대추나무, 밤나무도 덩달아 열매를 떨어낸다. 나무가 감당할 정도를 넘어선 상황이라 그럴 테지만 생육에 필요한 3대 요소도 챙겨줬는데 뒤늦은 가을장마 때문인가? 수국 때문에 물을 자주 줬기 때문에 익숙해져 있을 터. 일조량 때문일까? 떨어진 감들을 주워 살핀다. 감 꼭지 채 붙어 있는 감, 꼭지부분이 물러 떨어진 감, 물러서 터진 감, 그리고 깍지벌레가 도포되다시피 둘러싸인 감 등등. 떨어지는 것은 열매뿐만 아니다. 잎도 그렇다. 그런데 떨어진 흔적이 없다.

포도나무는 앙상한 줄기와 등나무에 생선가시같이 잎자루만 덩그러니 있다. 녹색을 잃은 그물망 같은 블루베리 잎, 그리고 얼마 전 정식한 배추 모종까지 본래의 모습이 온데간데없다. 대신 포도나무 줄기에 뿔을 가진 엄지손가락만 한 위풍당당 애벌레, 등나무와 블루베리 뒷면에 빼곡히 일렬로 붙어 있는 진노랑에 흰 줄 작업복을 입은 쐐기, 어린 배춧잎을 돌돌 말아 낮잠을 즐기는 초록 알몸의 애벌레, 배추 모종을 이식한 날 배추흰나비가 찾아 줬던 흔적(?)만 남았다.

포도나무나 등나무야 그렇다 치지만 배추까지 남김없다. 비가 그치고 나면 약을 쳐야 하는 걸까? 갈아먹고 남은 잎이 잘 자라 절일 정도는 되지 않을까? 작년에도 고민만 하다 걷잡을 수 없이 개체 수가 많아져 거의 벌레 차지가 되었었다. 더군다나 저 무시한 뿔, 유니콘을 빙자한 뿔을 가진 박각시 애벌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욱을 초토화 시킬 텐데.

가을장마라는데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빨래도 못하고 설령 빨래를 해도 온실로 드나들기를 반복한다. 학교공사판의 끝날 것 같지 않은 일 처리에, 공명에, 기계 소리에, 귀도 피곤하고 마음도 벌레를 잡아야 하나 죽여야 하나 거금을 들여 약을 쳐야 하나 덩달아 오락가락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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