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과 장본인
주인공과 장본인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8.18 1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각본 없는 무대에서 열연을 하는 주인공들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으로 살기란 아니 주인공다운 연기를 펼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각본도 없을뿐더러 출신배경과 처한 환경이 다르고 삶의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무게가 크기도 하거니와 주체적인 삶을 살기가 말처럼 쉽지 않아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야 이룰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게 주인공입니다. 은퇴하고 무위도식하다 보니 무대를 기웃거리는 단역배우가 되었습니다. 아니 바라보는 관객이 되었습니다.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몸담았던 조직과 하던 일들과 맺은 인연들에 파열음과 마이너스를 낸 장본인이란 소리만큼은 듣지 않고 살았음을 자위하며 애써 웃으며 삽니다.

하여 오늘은 저잣거리는 물론 역사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과 장본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주인공(主人公)은 연극 영화 소설 따위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 또는 어떤 일에서 중심이 되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리되고 싶고 그리 살고 싶은 게 바로 주인공입니다. 장본인(張本人)은 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한자말이어서 중국어에서 파생된 것처럼 보이나 실은 일본어에서 온 부정적인 의미(지탄과 비난거리를 제공한 사람)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어 잔재 청산'이라는 대의를 쫓아 장본인 대신 `주동자'나 `당사자' 등으로 바꿔 쓰는 게 옳습니다.

주인공을 장본인으로 잘못 사용한 씁쓰레한 사례입니다. 모 공중파 방송에서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가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 때 4강 신화를 쓴 선수들을 `한국축구를 세계 4강으로 우뚝 서게 한 장본인들'이라고 소개해 빈축을 샀지요.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주인공을 장본인으로 둔갑시키는 오류를 범합니다.

이러다가 나라를 팔아먹은 장본인인 이완용을 나라를 팔아먹은 주인공 이완용으로 표기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자살골을 넣어 팀의 패배를 자초했다면 패배의 장본인이 되고, 어렵게 한 골을 넣어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면 승리의 주인공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를 주도한 이는 사건의 장본인이고, 그들을 붙잡아 법의 심판대에 세운 경찰은 사건 해결의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승리와 미담의 주인공이 된 선수와 감독을 보았고, 패배와 원성의 장본인이 된 선수와 감독을 보았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출전했는데 누구는 주인공으로 상찬받고 누구는 장본인으로 비난받는 희비에 아연해집니다. 본의 아니게 한순간의 실수로 패배의 장본인이 된 불운한 선수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훌훌 털고 일어나 보란 듯이 재기하여 다음 파리올림픽에선 기필코 승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튼 세상에는 쓰라린 실수와 실패가 약이 되어 거듭나는 사람이 있고 독이 되어 주저앉은 사람이 있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주인공으로 살아라'의 저자 오리슨 스웨트 머든은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태어나며 주인공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혹시 지금 자신의 삶이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향해 물음을 던져보라'고.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무대 뒤에서 박수만 치며 살고 있는가?'라고.

그러면서 그는 주인공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언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 돕는다고, 내 안에 잠든 화산을 깨우라고, 행동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당당하고 크게 살아라'고 말입니다. 그대도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시인·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