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를 떠난 그곳 속리산 독보암지와 금강골 쌍탑
속세를 떠난 그곳 속리산 독보암지와 금강골 쌍탑
  • 허선행 충북문화재돌봄센터 모니터링1팀장
  • 승인 2021.07.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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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허선행 충북문화재돌봄센터 모니터링1팀장
허선행 충북문화재돌봄센터 모니터링1팀장

 

사지(寺址)는 말 그대로 절이 있었던 장소로, 과거 승려가 수도하고 생활했던 장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불교를 수용해오기 시작해 정치적인 이유로 전국에 수많은 사찰이 창건되었다. 이후 후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와 조선시대에 와서는 본래의 목적이 아닌 사회 경제적인 목적으로 역원(驛院)이나 왕실능원 관리, 사고(史庫)나 산성(山城)을 관리하는 등 특정한 시설물의 유지·관리를 위해 사찰이 건립, 활용되었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일까, 부처님의 인연법일까. 전란의 결과, 국가이념의 변화, 사찰 이전 등의 이유로 사찰은 폐사되어 지금 우리가 보는 `폐사지'로 변하게 되었다. 이렇게 폐사지로 변해버린 절터는 2010년 문화재청과 (재)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사지총람』에 따르면, 전국에 5,393개소가 있으며 그 중 충북에는 490개소의 폐사지가 있다.

충북에는 다른 어느 시도와 견주어 봐도 손색없는 국립공원 속리산과 속리산이 품고 있는 천년고찰 법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속세를 떠난 산, 속리산. 이곳에는 아직도 조사되지 않은 수많은 절터가 산속 곳곳에 있다. 그 중 `사내리 사지 24'로 명명되어 있는 일명 `독보암지'와 이곳과 관련된 탑인 `보은 속리산 금강골 쌍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은 필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처음 쌍탑을 찾았던 2015년 꽃피는 5월의 어느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속리산 세심정 아래에 차를 세운 후 배낭을 둘러메고 하나의 등산 스틱에 의지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 이 날의 임무는 속리산 금강골에 소재하고 있는 쌍탑과 절터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별다른 이정표도 없이 그저 그곳을 다녀간 선객(先客)이 남겨놓은 흔적을 길잡이 삼아 첩첩산중 골짜기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40여분쯤 갔을까, 첫 목적지인 금강골 휴게소에 도착했다. 여기로 가야 할까, 저기로 가야 할까. 다시금 사람 키만큼 훌쩍 자란 산죽을 헤치며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30여분이 더 흘러, 이 정도면 도착했을 무렵인데 가고 싶은 그곳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금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를 반복하기를 여러 번, 드디어 계곡 아래 절터를 발견! 그렇다면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탑이 있을 것인데,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울창한 숲 속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두 탑의 기단. 어찌나 기뻤던지, 같이 간 팀장님께 “팀장님! 여기 찾았어요!!” 산짐승이 놀라 그 일대를 도망갈 만큼의 반가움과 기쁨의 탄성이었다.

금강골 쌍탑은 금강골 절터의 동쪽 암반 위에 동서로 서 있는 2기의 탑이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97년에 복원해 놓았으며 당시 일부 부재를 교체하였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았으며 각 부재의 조성수법이나 건립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쌍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옛 절터인 독보암지가 있다. 독보암지는 임경업 장군에게 무술을 알려준 독보대사가 기거한 곳으로 현재 여기에는 평탄지 석축과 건물지 초석, 팔각 석재, 석조 등이 남아 그 당시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무사히 쌍탑과 독보암지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왠지 모를 그리움이랄까.

얼마 전, 금강골 쌍탑으로 가는 등산로를 우연히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다. “휴게소 철거 대상지 알림 - 금강골 휴게소 등등” 순간 지난 기억이 떠오르며 이제 사라지면 다시 못 보게 될 그곳에 대한 아쉬움이 스쳤다. 금강골 휴게소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지났을 수많은 산인(山人)들의 발자국과 목소리가 독보암지 가는 길 곳곳에 남아있을 텐데, 그 추억이 사라지는 아쉬움.

이렇듯 사지(寺址)는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에는 몇 명의 승려가 살았었는지, 어떤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는지. 또, 들려온다. 스님들의 밥 짓는 소리, 염불 외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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