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길 따라 상념에 잠기다(2)
마을길 따라 상념에 잠기다(2)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1.07.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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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제가 우리 마을의 소나무숲 오솔길을 종종 산책하지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이 오솔길을 꼭 찾는 이유는 금난초, 은난초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는 많은 개체를 볼 수 있었는데, 나물 캐러 오신 분들이 자꾸 캐어 가는지 찾는 것이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금난초와 은난초 중에 노란 금난초가 훨씬 귀합니다. 오솔길 옆으로 하얀 은난초 10개를 찾으면 금난초는 겨우 하나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것도 욕심을 내어 캐어가 화분에 심으면 죽을지 몰라 늘 이맘때 찾아 설레는 마음으로 보물찾기를 하고, 찾아내면 정말 휴식이 되는 기분입니다. 오래 찾아볼 수 있게 소나무숲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나무숲을 나가 한참 언덕을 돌아 윗마을로 들어서면 그 뒤로 밤나무숲이 울창합니다. 밤나무에는 유독 모기가 많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울창함이란 밤나무들이 어찌나 키가 크고 많은지 숲이 어두울 정도입니다. 밤꽃이 이르게 피면 숲 근처를 지날 때 코가 얼얼합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밤나무숲이 자리한 곳이 한국전쟁으로 인한 유골이 많이 나온 장소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녹음이 더욱 짙푸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는 마냥 낄낄대며 마을 모든 곳이 놀이터였지요. 당시에 밤 까고 줍던 소년이 이리 제법 컸으니 호국영령들을 위한 추모는 늘 가슴에 새겨야겠습니다.

밤나무숲을 뒤로하고 마을회관으로 오면 그 아래 `큰샘'이 자리하는데 마냥 낄낄대던 아이들은 떠나고 어르신들만 남은 마을의 우물터는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로 메워져 있습니다. 지하수가 흘러들어 가재가 살 만큼 맑고 찬 물이 가득했었습니다. 마을 빨래는 물론이고 한여름 밤이면 마을 형들과 친구들이 모여 앉아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절입니다. 집마다 늦었다고 어머니들이 부르면 집으로 돌아가면서 쏟아지는 별들을 보느라 목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고향마을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다 커서 맡은 바 제 일을 자랑스러워하며 아이들에게 아빠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보여줄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요즈음 제 의도치 않은 여건들과 풀리지 않는 일들로 인해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 변하지 않은 고향을 찾아 유년의 추억을 상기하며 작지만 귀한 생명에 감동할 때 세심(洗心)하게 됩니다.

지나는 길에 흔들리며 보아 달라는 꽃들에게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여 보세요. 호국영령의 흙에서 잉태되었을 생명일지 모릅니다. 여름이 더 무르익으면 물곳(무릇)과 타래난초가 고향집 마당에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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