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와 때문에
덕분에와 때문에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7.0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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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덕분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과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입니다.

세 음절의 엇비슷한 말이지만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덕분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의 표정은 밝고 둥근데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의 표정은 어둡고 모가 나있습니다.

`덕분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는 웃음을 전매특허인양 달고 살고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는 짜증을 버릇처럼 부리고 삽니다.

하여 사람들은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보다 `덕분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를 더 좋아합니다.

`덕분에'는 감사와 긍정과 포용을 낳고 `때문에'는 불평과 부정과 분란을 낳으니 당연지사입니다.

그렇습니다.

`덕분에'를 입에 달고 살면 감사와 자족감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불어나 삶이 즐겁고 평안합니다.

반면에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살면 작은 틈이 둑을 무너뜨리듯 일과 관계가 꼬이고 부실해져 삶이 힘들고 피폐해집니다.

똑같은 결과를 두고 어떤 이는 당신 덕분이라고 고마워하고 어떤 이는 당신 때문이라고 투덜댑니다.

저도 한때는 가난 때문에, 스펙 때문에, 백 때문에, 걸림돌 때문에 삶이 힘들고 출세가 더디다고 자학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못난 놈의 자기변명이고 합리화라는 걸 깨닫고 생각을 고쳐먹으니 세상이 좋게 보였습니다.

그랬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덕분에' 천지였습니다.

부모님 음덕 덕분에 무탈하게 살고 있고, 스승님 가르침 덕분에 질적 성장을 했고, 아내의 헌신 덕분에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살았습니다.

역경과 고비 덕분에 삶의 내공이 단단해졌고, 문학 활동 덕분에 내면의 황폐를 저감할 수 있었습니다.

놀아주는 좋은 후배 덕분에 쉬 늙지 않고, 손주들 재롱 덕분에 시름을 잊습니다.

돌아보니 삶과 존재가 온통 덕분이었습니다.

이렇듯 `덕분에'와 `때문에'는 관념이고 습관이며 버릇입니다.

웃음도 훈련이 필요하듯이 `덕분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꾸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기고 행복해지듯이 `덕분에'도 입버릇처럼 되뇌다 보면 덕분인 좋은 일이 생기고 행복해집니다.

웃는 이를 미워할 수 없듯이 아니 웃는 이를 좋아하게 되듯이 다소 못마땅하고 성이 차지 않더라도 애써 `당신 덕분에', `님 덕분입니다'를 거듭하다 보면 밉상도 곱상이 될 뿐만 아니라 철천지원수도 우군이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못 살겠다', `당신 때문에 되는 게 없다'고 악다구니를 퍼붓거나 그런 마음을 속으로 담아두면 정말 그리되고 맙니다.

`아파도 당신 덕분에 낳을 것 같다고', `힘들어도 당신 덕분에 이 난관을 헤쳐나간다고' 속삭여야 합니다.

`때문에'는 공멸과 나락의 화근이자 지름길이고 `덕분에'는 상생과 공영의 마중물이자 촉진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당신께 묻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되는 게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사는지, 아니면 애써 웃으며 `누구 덕분에', `무엇 덕분에' 일이 잘 풀리고 살만하다고 너스레를 떨고 사는지를.

전자로 여겨지면 `덕분에'로 갈아타야 합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당신의 남은 생은 물론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와 모든 것들을 위해.

지금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놈 때문에 죽을 맛이 아니라 그놈 덕분에 삶의 내공이 한층 깊어지고 더욱 견고해졌다고.

의료진의 헌신과 국민의 협조 덕분에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고.

하여 남은 생은 누군가의 `덕분에'로 살겠노라고.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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