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재발견
학교의 재발견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1.05.1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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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퇴근 후 시간,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퇴근길 연수를 한다. 늦은 저녁 퇴근길 연수를 진행하는데 핸드폰이 진동을 울려댔다. 수신자란에 찍힌 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이름, 6년 전 제자다. 전화를 받지 못하자 채팅 메신저로 메시지가 온다. 8월에 군대에 간다며 나를 보러 오겠다는 것이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되었나? 볼에 젖살이 오동포동하던 중학교 1학년 아이의 모습만 떠오른다. 반가운 마음을 채팅으로 주고받으며 점심을 함께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다음날 아이는 배차 간격이 30분이나 되는 버스를 한참을 타고 연수원까지 찾아왔다. 정류장에 서있는 청년의 모습은 6년의 시간이 흘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이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통통하던 볼살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덧니는 그대로인데 목젖이 보이게 웃던 모습은 간데없고 얼굴 가득 수줍은 미소다.

연수원 근처 식당에 마주 앉아 찬찬히 보니 그제야 그 시절 얼굴이 되살아난다.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시작했다. 운동을 계속했던 아이는 대학 입시 과정에서 경험한 좌절을 토로한다. 입학이 결정된 상태에서 난데없이 입학 예정자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용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은 어땠어?”안타까운 마음을 누르고 담담하게 물었다. “뜨거웠어요.”아이의 대답도 담담하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리라. 중학교 1학년 때를 떠올리면 “힘들어요, 하기 싫어요.”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교무실을 들락거렸던 녀석이다. 용접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고되고 어려웠을 텐데 무던한 표현이 안쓰럽고도 기특하다.

아이에게 학교가 어떤 의미였는지 물었다. “공부를 생각하면 학교는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학교는 진짜 다양한 애들이랑 생활하는 거잖아요. 제가 이렇게 바뀐 것도 학교에서 애들이랑 선배들이랑 생활하면서 배운 거에요. 그래서 학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군대는 해병을 자원했다고 한다. 여러 번 떨어졌지만 계속 도전해서 마침내 합격했다는 것이다. 해병에 가서는 힘든 수색대를 지원할 생각이라고 한다. “거기서 버텨내면 앞으로 힘든 일이 생겨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아,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버렸을까?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의 빈자리가 야기한 학습결손과 학력 격차 문제를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학습결손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은 모여서 하는 놀이와 경험을 빼앗겼다. 함께 놀고 몸으로 익혀 배우는 경험, 정서적 경험의 부재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진정 잃어버린 것은 경험과 관계다. 학교 공간에서 함께 경험을 해내고 나누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잃은 것이다.

지난 3월 대구 지역 학생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정서 검사에 의하면 초등학생 7%, 중학생 16%, 고등학생 24%가량이 정신건강에 적신호를 보였다고 한다. 연구진인 영남대 서완석 교수는 감염 예방에 밀려 소홀했던 아이들 정서, 행동, 관계 등의 문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물리적 거리 두기와 함께 방역수칙을 지키면서도 아이들이 대화하고 놀이할 수 있도록 하고, 정서적 위험도가 높은 학생이 혼자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6년 만에 만난 제자를 통해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배움의 크기를 다시 한번 새롭게 발견한다. 또박또박 자신의 삶을 채워나갈 제자에게 학교는 분명 경험과 관계를 통한 배움의 공간이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 아이들의 건강한 배움과 성장을 위해 정서적 안전망 구축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아이들의 소중한 경험과 관계를 더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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