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필터링의 폐해
기득권 필터링의 폐해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4.28 2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어른들은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교육은 필터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필터링 장치 역할을 하는 구세대나 기득권의 폐해가 심각하다. 필터링 장치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부 때문에 망하고, 우리나라는 서울대 때문에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육부는 각종 학교에 대한 필터링 장치 역할을 한다. 각급 학교가 살아남으려면 교육부의 요구사항(필터링, 심사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가 주도해온 해방 이후 우리나라 교육이 제대로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을까? 교육부 관료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해방 이후 수많은 교육정책이 있었지만 성공한 정책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교육현장의 문제는 말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꼴찌까지 서열화되어 있다. 당연히 서울대가 고등교육의 표본이 된다. 서울대 출신들이 우리나라의 요직에서 필터링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이 전국 인재들의 필터링 역할을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서울대 교수들이 가르치는 국어학이 우리나라 국어학의 모델이 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국어에 대해 특정 방식으로 경도된 관점을 갖고 있다면 우리나라 국어학 연구 전체가 문제가 된다.

역사는 어떨까? 서울대는 국립대학이 되기 전 경성제국대학이었다.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 사학자들에게 역사를 배웠다. 일본사학자들은 당연히 일제 강점을 옹호하는 역사관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서울대 교수들이 되었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국사학계를 좌우하는 학자가 되었고, 이들에게서 배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일본 학자들의 역사관을 이어받았다.

물론 아닌 사람, 곧 우리나라 역사를 우리의 시각에서 연구하는 학자(민족사학자)도 있다. 소수의 사람이 소위 말하는 식민사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주류는 아니다. 다만 소수의견으로 머물 뿐이다. 일제강점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대학에 머물러 연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류의 눈에 들지 않으면 자리 잡기 어렵다. 그들이 대학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사학계나 대학은 소수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지가 좁아진다.

대학의 교수들에게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학교 선생이 되고 그런 선생에게서 나는 역사를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도 모르게 조선이 패망한 것은 일제 때문이 아니고 우리의 선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외세에 기대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그 뿌리가 중국이나 일본에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내 머릿속에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을까? 학교 다니면서 역사를 배우고 시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박힌 생각들이다.

교육의 결과로서 내 머릿속에는 내가 생각해도 자존심 상하는 기분 나쁜 역사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나는 윗사람(선생이나 교수)의 필터링 장치를 통과하기 위하여 열심히 그런 생각들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서울대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젊은 시절의 나에게 기득권의 필터링 장치는 이상한 역사관을 심었다. 젊은 사람들이 구세대와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 때로는 다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들은 공돌이다. 당연히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아들을 무식하다고 놀린다. 그래도 꿋꿋이 살아간다. 왜곡된 역사적 지식을 갖고 있는 나보다 역사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아들이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할 수 있다. 밟은 눈은 치우기 어렵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은 치우기가 훨씬 쉽다.

/충북대 철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