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호칭의 향연
이름과 호칭의 향연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2.03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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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사람은 누구나 이름이라는 고유명사를 달고 살지요.

인구는 많고 쓸 이름은 한정되어 있어 동명이인이 허다하지만 다들 자신의 고유한 이름처럼 유일무이한 인격체와 정체성을 형성하며 한 생을 살다갑니다.

그런데 실생활에선 아이러니하게도 이름 대신 호칭과 직함들이 더 많이 쓰입니다. 그 호칭과 직함들로 인해 자신의 품성과 평판이 매겨지는.

호칭은 주로 연륜과 가족관계에 따라 파생되어 붙여지고 직함은 직장이나 사회에서 역할과 자리매김에 따라 파생되어 붙여집니다.

저를 예로 들어볼게요.

7남매 장남으로 태어났기에 부모님께 큰아들로 불렸고 남동생들에게는 형으로 여동생들에게는 오빠로 불리며 성장했죠.

혼기가 차 결혼하니 아내로부터 여보로, 자식을 낳아 키우니 아버지로, 그 자식이 결혼해 딸 아들을 낳으니 할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는데 운 좋게 백세시대를 향유하면 증조할아버지까지 될 터입니다.

또 동생들이 결혼해 자식을 낳으니 큰아빠로, 큰외삼촌으로 불림 받고 처갓집 쪽에선 김 서방, 처남, 형부, 사돈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혈연으로 맺어진 호칭들이 많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데 그 호칭들에 걸맞게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소꿉친구, 동네친구, 학교친구, 군대친구, 직장친구 등 언제 들어도 반가운 친구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외롭고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 이따금씩 `친구야 잘 있냐?'라고 안부를 묻고 그리워하는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그리고 살면서 누군가의 후배로, 누군가의 선배로 불리며 살았습니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선후배가 있다는 건 또한 인복입니다.

다음은 사회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직함이라는 호칭입니다.

가난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말단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해 결혼도 하고 자식들 대학교육까지 시키며 보람되게 직을 수행했으니 공직은 고마운 일터였습니다.

그렇게 공직생활을 하다 보니 보직에 따라 계장·과장·실장·국장으로 불림 받게 되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더니 교수라 하고, 신문사 편집위원과 이런저런 위원회에 위원으로 활동했더니 위원이라 부릅니다.

또 시집을 출간하며 50여 년을 시를 붙들고 사니 시인이라 부르고, 문학단체와 동호회 모임에서 심부름꾼이 되었더니 회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연유로 만나는 인연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집니다. 과장 시절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도 과장님이라 부르고 강단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교수님이라 부르며 동호회 등 단체 활동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회장님으로 부릅니다.

그러나 직함은 그 직을 떠나면 다 전직이 됩니다. 그냥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남들이 국장이라 부른다고 국장이 아니고 교수라 부른다고 교수가 아닙니다. 지금 제게 현직이라 할 수 있는 건 아니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그건 아마도 시인이라는 호칭일 겁니다. 어설픈 시를 빚고 있고 시처럼 살지 못해 부끄럽기는 하지만.

각설하고 사람들은 모두 저처럼 이런저런 호칭을 부여받고 삽니다.

어떤 이는 듣고 싶어 하는 호칭을 끝내 듣지 못해 가슴에 한을 안고 살고, 어떤 이는 호칭이나 직함의 값을 잘못 치러 영어의 몸이 되었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한 이도 있으니 좋은 호칭을 듣기 전에 먼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호칭과 직함에 부끄럽지 않도록 언제 어디서든 진실해야 하고 직분에 신의성실로 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성원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아무튼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제일 가치 있는 호칭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름과 서로 여보라 부르는 부부라는 이름일 겁니다. 사랑의 본산이자 본령이며, 행불의 시작이자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요.

그래요. 가족과 친지에게 만이라도 그리움이 번지는 이름으로 남도록 선하게 살자구요.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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