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중심
숨겨진 중심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 승인 2020.12.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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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많이 춥다. 게을러 돌절구 안의 물을 퍼내지 않아, 얼고 얼어 머슴 밥 고봉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논바닥이 갈라지듯 얼음 윗부분이 터졌다. 겨울에는 움직이는데 제약이 많다. 우물물을 길어 허드렛일을 하고 손이 시려 집 안으로 들어갈라 치면, 돌계단에 발바닥이 쩌-억 달라붙고, 현관문 손잡이에 손가락모양의 얼음코팅이 된다. 겨울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렇다고 집안에만 있는 건 내 체질상 어렵다.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데 최적화된 몸은 어딘가에 붙어 있질 못한다. 결국, 손에 무언가 집어들고 무언가를 깎고 있다. 찻숟가락이다. 엄지만 한 굵기의 가지인데 상처가 많다. 너무 삭아 무슨 나무인지도 분간할 수 없지만,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오랜 시간과 반복되는 시련이 거듭하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더 애지중지 가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난 상처가 아물 때까지, 아프고 아프지만 한 해 한해 기다리며 물을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했을 터인데, 삭정이가 되어 떨어지고 오랜 시간 버려져 있었다. 보잘것없이 부러진 나뭇가지에 어떤 역할을 주어야 할지 결정을 못 해 가지고 있다가 오늘서야 손에 쥐었다.

책상다리를 하고 조각도를 대었다. 반쯤 깎아 들어가니 나이테 전체가 평면에 그려졌다. 안경을 벗어 위로 올리고 봐야 할 정도로 촘촘하다. 양쪽으로 36개, 그리고 가운데 진한 줄 하나. 18년을 살았나? 19년을 살았나? 엄지만 한 굵기인데, 그래서 조각도가 잘 안 먹었나?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마딘 나무에 형태를 상상해가며 둥근 조각도로 속을 파 들었다. 아문 상처 부위에서 향이 난다. 깎다 말고 코를 들이댄다. 향이 그윽하다. 상처를 아물게 하느라 액체가 나와 굳어진 부위다. 이것을 수지라 하던가? 좋은 향이 난다. 나무가 삭아 겉의 향은 없는데, 상처가 난 부위에서 도통 가늠할 수 없는 향이 난다. 참으로 모질게 살았구나,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며 깎고서야 손아귀에 있는 나뭇가지를 살폈다. 가느다란 가지에 중심점이 보인다. 하나의 점을 중앙에 두고 밖으로 퍼져 나간 나이테, 심재와 변재가 딱히 구분이 안 되는 모질게 산 나뭇가지.

제법 폭이 있는 나무를 골랐다. 나무망치를 만들려 톱을 들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다. 신갈나무라 묵직하고 단단하다. 구멍 뚫는 비트로 손잡이가 들어갈 길을 낸다. 나무의 중심을 향해 길을 낸다. 어지간히 들어갔다. 생각하고 속도를 줄인다. 적당한 깊이가 되었을까? 안을 들여다본다. 안으로 보이는 나이테, 톱으로 절단된 면을 힐끔 본다. 나이테는 10개, 10년을 살았구나. 굵기에 비해 나이테가 적다. 그리 험난한 삶은 아니었나 보다. 나이테가 성글다. 잘 건조가 되어 비트를 안 받아들였던 듯싶다. 여기에도 중심점이 보인다.

잘라보기 전에는, 켜보기 전에는, 조각하기 전에는 나이테를 볼 수 없었다. 겉에 난 상처나 부러진 상태를 보고 막연히 생각한 것과는 다른, 대패질을 하고, 사포질을 하고, 조각을 하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그러니 더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며 나무를 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간다. 그 모든 상황에 늘 중심점이 있었다. 그 중심점은 나무가 자라는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그 중심점을 축으로 자란다. 중심이 없는 자람은 없다.

나무를 대할 때 목리와 나무의 단단함, 색감 정도만 보았지, 중심점은 아예 생각도 못했다. 어느 지점쯤에 있겠지 정도, 그러나 중심점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심점은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를 다루면서 중심선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중심은 점이기에 늘 옆 마구리 부분에서 확인한다. 둘레가 큰 나무건, 가느다란 나무이건 중심점이 있다.

중심은 단순한 시작점이 아니다. 중심은 들어서 받아들이고 몸집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라면서 더욱 안으로 자리를 점한다. 중심은 밖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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