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담은 그림, 천문도
하늘을 담은 그림, 천문도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20.12.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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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나에게 코로나 19로 잃어버린 소중한 일상 중 하나는 극장에서 영화 보기이다.

커다란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로 즐기는 영화 한 편은 일상 속 작은 여유이자 즐거움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문득 헤아려보니 영화관을 방문해서 본 마지막 영화가 `천문 : 하늘에 묻다'였다. 무려 1년 전에 본 영화인지라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종과 장영실이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장면과 장영실이 마차 천장 위에 정성스레 그려넣던 천문도는 또렷이 기억이 난다.

천문(天文)은 예로부터 제왕의 가장 큰 책무였다. 문자 그대로 하늘의 글, 즉 하늘의 흐름을 읽고 그 뜻을 파악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국시대 이래 국가는 천문을 관측하는 관리를 두고 이를 위한 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관찰되고 쌓여온 기록들이 모여 “천문도”로 완성되었다.

우리나라 천문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영화 속에도 등장한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영화 속에서는 마치 이 지도를 장영실이 새롭게 만들어 낸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사실 이 지도는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조선 태조 때 만들어졌다. 하늘의 모습을 12차(12次; 동양의 별자리)와 분야(分野: 역대 왕조에 대응하는 땅의 영역)로 배열해 놓은 그림으로, 우리나라 하늘에서 보이는 1.467개의 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을 세운 후 얼마 되지 않아 한 노인이 태조에게 고구려 천문도 탁본을 바쳤다고 한다. 당시 태조는 역성혁명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태였기에, 하늘의 뜻이 담긴 천문도를 얻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태조는 매우 기뻐하며 이 천문도가 영원히 전해지도록 돌에 새겨 간직하게 하였고, 그때 만들어진 돌판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이다.

이 지도는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로서, 조선시대에는 이 비석의 내용을 필사하거나 목각하여 인쇄한 판본이 사대부들의 소장품으로 사랑받기도 하였다. 더욱이 이 지도는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웅? 나는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잠시 지갑 속을 살펴보시길. 여러분의 지갑 속 고이 들어있는 만원 지폐 뒷면에 그려진 별자리가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일부이다.

충북에도 보물로 지정된 천문도가 있다. 바로 1985년 보물 848호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신법천문도 병풍>이다. 고구려 천문도를 기초로 만들어졌던 <천상열차분야지도>와는 달리 이 지도는 서양의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천문도로, 영조 17년(1741) 중국의 사신으로 갔던 천문관 김태서 등이 독일인 선교사 쾨글러의 <황도총성도>를 모사해서 그린 것이다. 이 천문도는 북쪽과 남쪽의 하늘을 나누어 두 개의 커다란 원형으로 표현하였으며, 원 안에는 모두 1855개의 별들이 그려져 있는데, 밝기에 따라 별의 크기를 6등급으로 나누어 표현할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육안으로 절대 볼 수 없는 행성들의 정교한 모습까지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태양의 흑점,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 토성의 고리, 목성의 위성과 같은 부분으로, 이는 천체망원경이 있어야 관찰할 수 있는 사실들이다. 이를 통해 신법천문도가 서양의 천문기술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천문도를 보면서 우리 선조들은 나라의 길흉을 점치고, 앞날을 예측하였을 것이다. 찬바람을 타고 코로나19의 기세가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요즘, 문득 하늘에 묻고 싶어진다. 언제쯤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하늘은 그 답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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