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8.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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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살다 보니 생각을 들여다보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생각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생각이 쓸모없다는 걸 알게 된다. 생각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스트레스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든 입에 착 달라붙는 음식이든 입 안에 넣고 씹으면 이가 손상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생각을 들여다본다. ⇒ 대부분 생각이 쓸모없으며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걸 알게 된다. ⇒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 스트레스 수치가 현저히 감소한다. ⇒ 정신이 건강해진다.

생각이라는 것이 묘해서 자신이 안 하려고 해도 떠오르고,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게 된다. 아이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앞선다. 주변 사람하고 잘 지내라, 절제된 삶을 살라는 등의 잔소리가 나온다. 제가 알아서 합니다. 걱정 마세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한 것이다. 불필요한 생각을 했고 그걸 말로 옮긴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을 안 하기는 어렵다. 걱정-잔소리-냉정한 대응-머쓱함, 이건 부모 자식 사이의 영원한 사이클이다.

연인이 길을 간다. 남자가 다른 여성을 보고 눈이 따라간다. 많이 따라간 것도 아니다. 잠깐 따라가다가 애인이 옆에 있다는 걸 생각하고 바로 원 상태로 돌아온다. 이미 때는 늦었다. 저 여자 어디가 그렇게 좋아? 내가 옆에 있는데 눈이 절로 그렇게 따라가져? 내가 없을 때는 눈만이 아니라 몸도 따라가겠네? 나는 안중에도 없지? 안절부절, 대응할 방법이 없다. 여자가 문제라구? 따라간 눈이 문제다. 눈이 왜 따라갔냐구? 자신도 모르게 느낌(생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생각이 자신을 먹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차가 막힌다. 옆 진입로로 들어서기 위해 10여 분을 저 뒤에서부터 답답하게 왔는데 끼어들려는 차가 있다. 화가 난다. 안 비켜준다. 경적을 울리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난리를 친다. 벌컥 울화가 치민다. 뭔가 대꾸를 해야 할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차에서 내려 따따부따하면서 시비를 가렸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참는 것이 좋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그냥 간다. 화가 안 삭여지기 때문에 한참을 씩씩거리면서 간다. 나도 그 화가 감당이 안 된다. 내 생각이 나를 먹어버린 것이다.

나쁜 생각만이 아니라 좋은 생각, 자신이 원하는 생각도 자기를 먹어버린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너무 사랑한다. 그 여인은 오셀로 삶의 가치이자 보람이다. 사랑은 대표적인 자발적 느낌이나 감정이다.(정말 자발적인 건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이아고는 오셀로의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이용하여 오셀로의 마음에 질투와 의심의 불을 지핀다. 이 질투와 의심은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사람의 마음에 든 작은 불씨(사소한 생각)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사람을 침몰시키는 과정을 `오셀로'만큼 잘 묘사한 작품도 없다.

질투와 의심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이는 왜 생겼을까? 사랑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파국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나 그런 거라구? 사랑해서 결혼하구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고 나이 들어서는 자기 삶의 허망함을 느끼는 우리나라 남자들의 사례를 보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닐까? 그건 아줌마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다 저 인간을 만나서 내가 왜 이 고생인가? 이런 말 안 들어본 남편이 있을까? 있다면 예외적인 경우다. 사랑이라는 생각이 나의 삶을 다 가져가셔 결과적으로는 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결론이 뭐냐고? 생각하지 말고 살라는 거다. 안 하고 살 수 없으면 최소한으로 하고 사는 것이 차선이다. 사람이 생각을 안 하고 어떻게 사냐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고생을 더 할 여력이 있다. 한참 후에(고생을 좀 더 한 후에) 다시 얘기합시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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