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의 밤비
산장의 밤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8.0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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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여름날에 흔한 것이 비이지만, 깊은 산 속에서 밤을 지샐 때 만난 비는 평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아마도 산속이라는 적막한 공간과 밤이라는 적막한 시간이라는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려(高麗)의 시인 고조기(高兆基)는 여름 어느 날 깊은 산 속의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비를 맞이하고는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산장의 밤비(山莊夜雨)

昨夜松堂雨(작야송당우) 어젯밤 소나무 집에 비가 내리니
溪聲一枕西(계성일침서) 시내 소리가 베개 서쪽에서 들리네
平明看庭樹(평명간정수) 동틀 녘 마당의 나무를 보니
宿鳥末離栖(숙조말이서) 잠자던 새는 아직도 가지를 떠나지 않았네

시인이 기거하는 송당(松堂)이라는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깊은 산 속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깊은 산 속에서 맞는 밤은 적막하기 마련이라서 비가 오면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게 되어 있다.

어젯밤 송당에 비가 내렸는데, 그 비에 집 근처 계곡물이 불어나, 그 흐르는 소리가 베고 누운 베게 서쪽에서 또렷이 들린다. 역시 산속 밤의 적막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시인이 근심이 깊어 잠 못 드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도리어 적막한 산속 여름 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반가운 손님으로 비를 보고 있다. 밤비는 시인의 무료함을 달래 줬을 뿐 아니라, 뜻밖의 선물까지 덤으로 남겨 주었다.

동틀 무렵 마당에 나가 보니 나무에 엊저녁 와서 잠을 청했던 새가 여느 때 같으면 먹이를 찾아 떠났을 시간인데도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마치 밤비가 시인의 무료함을 꿰뚫어 보고 말벗을 보내 준 것이리라.

여름날 깊은 산 속 방 안에 혼자 있다가 빗소리를 들으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물론 폭우라면 무서울 수도 있겠지만, 주룩주룩 내리는 보통의 빗소리는 정겹기까지 할 것이다.

홀로 있을 때 잘 찾아보면 주변에 친구가 적지 않게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밤비도 친구이고 밤비로 인해 아침 출타를 미룬 마당 나무의 새도 친구가 아니던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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