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日蝕)
일식(日蝕)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20.06.21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맑은 하늘에 뜨겁게 빛나는 태양. 그런데 날아다니던 새들은 무엇을 예측했는지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는다. 뜨거운 열기가 조금 약해진다 싶더니 주위가 서서히 어둑해지고, 한순간 온 세상이 암흑에 휩싸였다. 별까지 한둘 나타난다. 한낮에 태양이 사라지는 현상, 개기일식이다.

2009년 7월 22일, 상하이에 일식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태양이 완전하게 가려지는 개기일식의 지속시간이 6분 이상으로, 이렇게 긴 개기일식은 2132년에야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늘이 허락해야 볼 수 있는 것, 다음 날 아침 비가 예보되어 기대로 들떠 있던 상하이는 그만큼의 실망으로 이른 파장 분위기가 되었다. 출장 온 기자들이나 일식을 직접 보겠다고 날짜를 맞춰 여행 온 사람들, 현지인들 모두 애써 준비한 장비를 한옆에 내려놓고, 술잔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왁자지껄했다. 한낮 기온 40도를 웃도는 도시의 열기가 밤늦도록 식지 않았지만, 우리 팀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에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달렸다. 비구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다. 아침에 상하이에 비구름이 도착한다고 했으니, 우리가 서쪽으로 달린다면 이미 구름이 지나간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맨 앞좌석에 앉은 인솔자와 천문 대장은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인공위성 구름 사진을 살피며 구름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계산하고, 서쪽으로 뻗은 도로망과 비교하였다. 버스 안에는 기대감과 또는 너무 높은 기대를 하지 않으려는 감정들의 시소 타기로 조용한 긴장감이 흘렀다.

4시간 이상을 달려 예정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태양은 구름 속에 있어 어디쯤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주위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달이 태양을 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가 그냥 구름 아래에서 어둠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나지만, 어떤 방정맞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갑자기 버스가 도로에 멈춰 섰다. 지나는 차들은 버스 두 대에서 80여 명의 사람이 왜 나오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각자 태양 관측 안경을 하나씩 받아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대부분은 구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구름 사이로 태양이 나왔다. 태양 관측 안경으로 바라본 태양은 왼쪽 아랫부분만 간신히 활처럼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주황빛 활은 점점 가늘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지고 온 세상이 어둠에 싸였다. 환호성과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일행을 하나로 감싸는 뿌듯함이 어둠 속에서 별이 되어 빛났다. 포기하지 않길 참 잘했다.

개기일식을 대한민국에서 내 생전에 볼 수는 없다. 개기일식을 보려면, 그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어야겠다. 도시면 더 좋다. 극이나 정글이나 바다는 어렵다.

2009년 개기일식 여행은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볼 수 있고, 방학에 일어나는 일이었으니 내게는 최고의 기회였다. 그러나 2009년 7월 22일 상하이에서 개기일식이 있던 그 시각, 나는 서울과학관에서 서울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부분일식을 관측했다. 여권 문제로, 79명의 일행이 상하이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속이 쓰렸다. 어린 두 딸을 친구와 여행사 직원에게 부탁해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일식 여행 후기를 기대하는 학생들에게 두 딸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엮어 들려주었다.

2020년 6월 21일, 오늘은 내가 사는 곳에서 부분일식을 관측할 수 있다. 다른 어느 곳에서는 금환일식으로 관측된다고 하니, 지구 어느 곳에도 `한낮의 완전한 어둠'현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개기일식을 보고 싶다. 내 일생에 이 현상을 직접 볼 수 있을까? 지금의 계산대로라면 2026년 아이슬란드로 가면 된다. 나도 포기하지 않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