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날
학교 가는 날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20.06.0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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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아침에 출근했더니 매일 엄청나게 재잘대던 새소리보다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와 뭉클한 맘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 만인가. 5월 20일 드디어 3학년이 등교하였다.

나는 한때 내 아이는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개인의 특성을 일반화시키는 교육, 하나의 정답이 있는 듯 지식을 배우는 것, 무엇보다 네모난 교실의 정해진 자리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12년간 앉아있게 하는 이 방식은 누가 정해놓은 것인가. 교사로서 나는 그런 교육의 앞에 서 있고, 무엇보다 잘 해내려 애쓰고 있었다. 현실과 이상의 두 가지 세상을 사는 이중생활을 하는 불편한 마음에 `나는 항상 이직을 꿈꿨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의심하였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소마' 같았다.

내 아이를 낳으니, 학교의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교육 현실이 더욱 뚜렷이 보였다. 한겨레 문화센터의 발도르프 인형을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발도르프 교육을 알게 되었는데, 인지적 발달을 우선시하기보다 손의 감각, 음악과 미술 등 수공과 예술교육을 중요시하는 점이 좋았다. 아이를 미리 확정된 교육목표로 유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아이 안에 잠자고 있는 특성과 능력을 깨우고자 하는 교육이라니, 나무처럼 가지를 뻗으며 자라날 내 아이가 상상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가 루돌프 슈타이너의 `일반인간학' 세미나를 하기도 했다.

학제나 학사 일정의 운영도 좀 더 논리적으로 생각되었다. 학문적인 일은 아이들이 가장 민첩하고 집중력이 강한 아침 시간 동안 집중되고 수공예와 육체적인 활동을 포함하는 과목들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오후 시간에 한다. 12학년의 학제에서 초등학교 8학년 동안 한 선생님이 가르친다. 학생은 좀 더 존중받는 것 같았고 교사는 가르치고 돌보는 사람으로서 좀 더 책임감 있고 정당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삶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같다. 그 위에 놓인 나는 머릿속으로 알아가는 것과 실행할 준비를 하고 실천을 하는 것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였고, 내 아이도 이미 시간의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쉼 없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립학교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때 스스로 던져보았던 질문이 있었다.

`이런 학교조차 없었다면?'

나는 경제적 부자도 아니고 시간적 부자, 문화적 부자도 아니다. `이런 학교'조차 없다면 내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상에 맞는 최선을 선택할 수 없다면 현실에 맞는 차선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차선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사랑하게 되었다. 목표지향적인 교육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을 조금이라도 깨보려고 노력해보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하니 교사로서 숨통이 트이고, 학교의 의미가 새로이 다가왔다. 내가 차선이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교육시스템도 많은 이들이 긴 시간을 통해 서서히 개선하여 만든 결과이고, 이러한 과정은 많은 이들의 힘으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해내면 된다. 조급하게 앞서가지 말고 아이들과 나란히 함께 가면 된다. 나는 이제 이직을 꿈꾸지 않는다.

2학년은 5월 27일, 1학년은 6월 3일에 등교하였다. 학교의 주인이 되어 아이들을 기꺼이 환영한다. 배움의 방법은 많지만, 함께 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서로 배우고 소통하는 친구들이 있는 곳, 아이들도 학교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사실 학교의 주인은 아이들이다. 주인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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