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
생명의 신비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05.2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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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유난히 내 눈길을 끄는 병아리가 있다. 생후 15일이 된 녀석. 삐약삐약 거리며 어미를 쫓아다니는 모습이 여간 앙증맞지가 않다. 까미라 이름 붙여준 녀석이다.

병아리는 3주면 부화가 된다. 우리 백봉이도 정확히 21일이 되자 한 마리를 부화시켰다. 알에서 태어나는 생명의 탄생은 그야말로 신비로움의 극치다. 부화되는 광경을 관찰해보면 신비함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딱 1마리가 부화 되었을 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더는 부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버리지 않고 6개를 계속 품게 했다.

부화시기 6일이 지났다. 이제는 포기해야만 할 때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6일이나 지났으니 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싶어 미련을 버리고 거름더미에 던져 버렸다. 거름 밭에서 발길을 돌리는데 어디선가 `삐~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저만치 멀리 있는 닭장의 병아리 소리치고는 너무 크다. 다시 `삐약'소리가 났다. 자세히 들어보니 거름더미에서 나는 소리였다.

버린 6개의 달걀 중 4개는 깨졌고 2개는 온전하다. 그런데 깨진 4개 중 2개는 골은 알이었고 2개는 피가 맺혀 있었다. 부랴부랴 4개를 주워 다가 다시 어미 품에 안겨주었다. 그런데 불량 어미는 이미 부하가 된 1마리만 돌볼 뿐 다시 넣어준 알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 졌다. 저러다 귀한 생명이 꺼질까 안타까웠다. 다시 넣어준 알 중 삐약 소리가 나는 알을 골라내려는데, 알을 품지도 않으면서 접근조차 못 하게 하면서 손을 마구 쪼아댔다.

겉껍질을 조심조심 천천히 걷어냈다. 딱딱한 껍질이 벗겨지고 속껍질에 쌓인 병아리는 꿈틀거리며 연실 비약 소리를 냈다. 겉껍질은 무난히 벗겼지만, 속껍질을 찢는 것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이 속껍질을 찢으면 피가 나지 않을까? 곧 죽는 건 아닐까? 망설이고 망설이다 숨죽여 간신히 찢었다.

가만히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도 보고 살짝 쥐어보니 얼음장처럼 차갑다.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다. 그렇다. 내 체온이 36.5도다. 두 손바닥으로 꼬~옥 감싸 안았다. 무엇보다 체온을 올려주어야 한다. 손바닥 안에서 한 생명이 생사를 헤매고 있음에 더욱 마음이 찡했다. 손바닥의 온기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엔 수건을 깔고 컨테이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듬뿍 쬐어주었다. 서서히 발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오호! 그래 그래 움직여라'

인큐베이터를 생각했다. 조산하거나 미숙아에게 적용하는 인큐베이터.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놓았다. 우선 잦은 깃을 말려주는 게 급선무다. 물기가 걷혀야 체온이 오를 게 아니겠는가? 한 시간여 지난 뒤 깃털이 뽀송뽀송해지며 병아리는 생기를 찾아갔다. 처음엔 다리, 배가 위로 된 체 거꾸로 뒤집혔던 게 바로 앉아 제법 자세를 취하게 됐다.

그때 그 병아리 까미다. 깃 색깔이 검다고 까미라 부른다. 오뉴월은 해가 길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자라는 정도의 차이가 크다는 말로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고 했다. 어미 품에서 자연 부화된 녀석과 내 손에서 부화된 까미는 형제이지만 세상에 나온 지 6일의 차가 나는 만큼 크기에서 한 배의 병아리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다르다. 까미는 또 이상스러울 만큼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한다. 아마 병아리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듣는 목소리를 어미로 생각하다고 하던데 그래서인 모양이다.

형제가 어미와 놀다가도 “까미야”부르면 내게 쪼르르 달려온다. 어미가 꼬꼬꼬 불러도 내게로 오는 이 엉뚱한 까미를 그저 어안이 벙벙히 쳐다만 보는 어미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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