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손손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 충주 모현정(慕賢亭)
대대손손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 충주 모현정(慕賢亭)
  • 김형래 강동대 교수
  • 승인 2020.05.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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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조선 초기의 문신 정인지(鄭麟趾1396~1478)는 충주를 “남쪽을 지키는 길목의 땅”이라 했다. 남한강을 통해 경기·경상·강원도 등 여러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고려시대 덕흥창(德興倉)·조선초기 경원창(慶源倉)·조선후기 가흥창(可興倉) 등 조세 운반의 중간 창고가 충주지역에 설치됐다. 물길은 소백산맥을 넘나드는 죽령·계립령·이화령·조령 등의 고갯길로도 연결돼 영남대로의 중요한 길목이 되었다.

모현정(慕賢亭)은 조선후기 5대 하항 중 하나였던 목계나루터에서 약 2km 위쪽인 금가면 하담리 남한강변 언덕에 있다. 모현정이 있는 자리는 옛 문헌에 나오는 충주 팔경 중의 하나인 하담추월(荷潭秋月)이라 일컫던 곳이다. 예전에는 정자 주변에 연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는 하담(荷潭)이 있었는데 하담 위에 밝게 뜬 달이 일품이라 표현한 것이다.

충주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이곳에 원래 사휴정(四休亭)의 한 곳인 삼휴정(三休亭)이란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휴정이란 우륵이 탄금대(彈琴臺) 주변을 찾아다니면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쉬며 머물렀던 누암리의 청금정(聽琴亭), 금가면의 옥강정(玉江亭), 하담리 하소(荷沼), 목계리에 있던 정자 사휴정을 일컫는다.

사휴정과 하소마을은 다산 정약용의 시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하소마을에는 다산의 조부 정지해와 조모 풍산 홍씨,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윤소온, 둘째형 정약전의 묘가 있었다.

아마도 다산의 고조부와 증조부, 조부까지 3대에 걸쳐 벼슬을 하지 못하면서 가세가 기울자 충주의 유력 가문이자 다산의 할머니 집안인 풍산 홍씨 선산에 가족묘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묘소는 40여 년 전 천주교 천진암 성지로 이장돼 현재는 위치를 찾기 어렵다.

다산은 부모 묘를 하담에 모신 후 고향인 남양주 소내(苕川)에서 충주 하담까지 남한강 물길을 따라 자주 왕래하고 마음의 안식처로 삼았다. 1801년(순조 1) 천주교 신유박해 사건으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경상도 장기로 유배를 떠나면서 하담에 있는 부모 묘소에 들러 성묘하고 나서 통한의 눈물을 뿌리며 쓴 시가 `하담의 이별'이다. 강진에서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남양주 생가에 머무르면서도 부모 묘소가 있는 하담을 잊지 못해 생가 옆에 하담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하루'(望荷樓)를 짓고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모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모현정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 모당(慕堂) 홍이상을 추모하기 위해 홍승하·홍관식 등 후손들과 충주지역 선비들이 1817년(순조 17)에 세웠다. 홍이상은 경상도관찰사와 대사성을 지내고 말년에 관직을 사직한 후 이곳으로 돌아와 강가에 집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정자는 대개 교육이나 강학, 인격수양 혹은 연회나 휴식을 위한 장소로 건립되는데, 조상을 기리기 위한 재실의 성격을 가진 건물로 세워지는 경우도 있다. 모현정이 바로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정자이다. 조상 추모를 목적으로 정자를 세우는 것이 일반화된 시기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그 앞 시대에는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에 한해서만 허용됐다.

모현정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어 경관이 빼어나며, 남동쪽으로 100여m 아래에는 1786년에 홍이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하강서원과 하강단소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다산 정약용의 선영(先塋)이 위치하고 있어 그의 발길이 잦았으며, 하담을 오가거나 하담을 생각하며 남긴 시와 글이 열 편이 넘는다.

김형래 강동대 교수
김형래 강동대 교수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모현정에 올라 조상에 대한 추모의 뜻을 되새겨 보고, 다산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로서 그의 자취를 찾아보는 일은 의미 있는 탐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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