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초과
필요 초과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0.05.2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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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도 우수하지만, 유럽에서의 모범 대응국가를 꼽으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독일이다. 독일은 최근 신문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이 4.4%로 같은 유럽에 속한 프랑스(15%), 이탈리아(13.9%), 스페인(9.9%)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교해 독일 사망률이 낮은 원인을 찾아보면 감염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 핵가족 문화,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검진, 감염자의 고른 지역 분포 등을 들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감염 연령대가 낮았던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주로 사망이 일어난 연령층이 기저 질환을 가진 고령자 집단이었음을 감안하면 이해 가능하다. 또한 핵가족 문화로 인해 감염 경로로 지적되는 접촉이 최소화되었다는 점이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검진을 통해 확진자를 미리 선별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높였다는 것 역시 납득이 가능한 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감염자의 고른 지역 분포다. 이 점은 병상의 부족 없이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사망률을 낮춘 원인이 된다. 또한 병상의 부족이 없었다는 점은 그만큼 독일이 의료 시설의 확충에 집중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독일은 중환자 병상을 2만 5000개 확보하고 있으며, 현재 추가로 1만여 개를 구축 중이다. 이 숫자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이탈리아 3000여개, 프랑스 7000여개, 영국 5000여개 수준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2011년 조사한 인구 10만 명당 중환자 병상 수에서도 독일은 29.9개로 1위다. 이탈리아 12.5개, 프랑스 11.6개, 영국 6.6개인 것을 보면 독일의 의료분야 시스템 확충은 A 학점 수준이다.

더 눈여겨볼 점은 의료시설 확충이 사망률을 낮춘다는 이 원리가 우리나라에서도 증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관련 병상 수를 보면 우리나라 역시 인구 1,000명당 12개를 확보해, 동일 기준 8개인 독일, 6개인 프랑스, 3.1개인 이탈리아, 0.5개인 인도에 비해 매우 모범적이다. 우리의 코로나19 사망률은 2.4%로 확보한 병상 수가 많을 때 코로나 사망률 역시 의미 있게 감소함을 알 수 있다.

작년부터 공부를 시작한 프리드리히 쉴러의 연작 편지로 쓴 인간의 심성교육 공부가 이제 해를 넘겼다. 쉴러는 딱 그만큼, 필요한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과잉이나 여분에 해당하는 것)을 하는 것을 미와 예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필요 초과(Superfuity, Uberfluss)'로 불리는 이 필요 이상의 것이 예술을 예술답게 한다는 것이다. 쉴러는 유용한 목적에 불과한 사냥용 가죽 띠를 위해 사람들은 좀 더 광택 나는 가죽을 사용하고, 술잔으로 쓸 뿔로는 더 장엄하게 가지 뻗은 것을 택하며, 심지어 칼을 차는 허리띠에도 기묘하게 아름다운 장식을 넣은 것을 예로 들었다. 쉴러의 필요 초과를 코로나19 대응 국면에 적용한다면 필요한 만큼의 병상 수 이상을 확보하는 것, 조금의 의심이라도 있는 사람 전체를 꼼꼼하게 검사하는 것 등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스승의 날이 들어 있었던 지난 주말, 곱게 포장된 살구 두 상자가 배송되어 왔다. 노지의 살구는 아직 작고 푸른데, 유기농이라 붙은 그 살구는 주홍빛에 알이 굵고 맛도 제법 들었다. 한 입 베어 무니 입 안 가득 퍼져오는 싱그러움. 살구를 좋아하는 제 선생을 위해 곳곳을 뒤져 찾아낸 살구일 터…. 머릿속으로 한 단어가 스쳐갔다. 필요 초과. 제자에게 베푼 것이 일천한데, 마음과 정성이 담긴 살구가 내게 필요 초과가 아닌가? 밀려드는 부끄러움의 끝에 가만히 생각해본다. 옛 성현께서는 제자의 존경 때문에, 그 존경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스승도 성장한다 하셨단다. 살구에 부끄럽지 않은 또 한 해를 살아가리라. 필요 초과가 예술을 예술답게 하듯, 사람을 사람답게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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