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스승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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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스승의 날 스승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스승은 어디에서 숨바꼭질하고 계시는 걸까? 제자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가르치기에는 힘든 세상이라 지레 겁을 먹고 자취를 감추신 걸까? 참스승의 그림자가 사라진 시대, 빛은 어디서 무엇을 비추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의 정신과 사상을 지탱하는 공교육마저 자본에 편승하여 길을 헤매고 있다. 사제 간 신뢰가 무너진 시대, 개인과 사회, 국가의 백 년을 내다보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우리의 교육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참스승의 훈계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질타로 역풍을 맞는 시대, 사제 간의 끈끈한 사랑과 공경은 우리 곁에서 멀기만 하다. 교육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앎은 개인의 삶을 밝혀주는 지혜의 등불이다. 자신에게 갖추어지지 않은 소양을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생존의 질과 양이 높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 우리는 왜 선생님의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지 모르겠다. 스승님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경건한 마음은 이제 어디에서 찾지?

5월이 되자 오래된 학우한테서 스승의 날 한번 뭉쳐보자는 전화가 왔다. 그 학우는 스승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학우들이 그리워 스승의 날을 핑계 삼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농후했다. 부족한 게 많아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는 학부만 해도 6개 대학을 다녔다. 초중고와 대학원, 3개월, 6개월짜리 교육 과정을 합한다면 나의 선생님은 50명이 넘는다. 이 중에 내가 존경할 만한 스승님을 꼽으라면 과연 몇 분을 꼽을 수 있을까? 여러 과정의 교육을 받으며 나는 스승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은 선생님의 주도적인 교수법이 아니라 마치 인기몰이라도 하듯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가르치는 선생님을 종종 본다. 그런 선생님 밑에 배운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생활할지는 불 본 듯 뻔하다. 연락은 끊겼지만,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스승의 날이면 생각난다. 선생님은 오지 중학교에 오셔서 수업 오 분 전 눈을 감게 한 후 기죽지 말고 당당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라고 학생들에게 정서적 교육을 소신껏 가르쳤다. 오 분 동안 전해지는 선생님의 진실한 말씀을 등불로 삼아 흔들릴 때마다 무지 노력하며 산다. 그때 물려받은 참신한 교수법 또한 용의하게 활용한다.

코로나로 생활 방식이 바뀌고 있다. 닫혀 있던 교육의 현장도 대학을 시작으로 서서히 대면 강의가 시작되었다. 수그러들었던 코로나가 이태원 클럽 방문자로 인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다음 주 고3부터 공교육이 시작된다. 학생 없는 학교는 무용지물이다. 선생님 없는 사회 또한 성장할 수 없다. 학생들도 집에 있는 동안 친구와 선생님이 아주 그리웠을 것이다. 개강하면 다정한 친구와 선생님이 함께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배운다는 것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지식은 세계를 확장한다. 공동체 사회 함께 지식을 공유하며 배워나갈 때 우리의 삶은 생동감이 넘친다. 지성인의 정당 학교 교육이 무너지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우리의 미래는 길을 잃는 이방인 신세가 된다. 지식은 공적이고 윤리적 존재이다. 지식 수입국이었던 우리의 교육을 지식인들은 반성해야 한다. 요즘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루에 6시간 수업을 받고 있다. 가면을 쓰고 수업하는 내내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코로나 사태로 생활속 거리는 당분간은 이어질 것 같다. 우리 어린 학생들이 해제될 때까지 마스크를 끼고 수업을 해야 한다.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스승 없는 학생 없고, 학생 없는 스승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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