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9번의 일
  • 김세원 중원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0.05.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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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세원 중원교육도서관 사서
김세원 중원교육도서관 사서

 

얼마 전 아버지는 40년이라는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퇴직하셨다. 퇴직을 기념하는 가족 식사 자리에서 축하드린다는 말씀과 함께 아버지의 속마음을 넌지시 여쭤보았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후련하다는 말씀보다는 한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삶을 끝내고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을 더 많이 이야기하셨다.

아직 사회 초년생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 혹은 가장으로서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직장, 직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을 하고 보상을 받는다는 개념보다는 그 안에서 성취감을 얻고 자신의 꿈으로 이루고 나아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원초적이지만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기본 뿌리 같은 것이다.

그럼 과연 이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면 나의 삶과 주변의 모든 상황들은 어떻게 변화할까? 상상하기 싫지만 그렇다고 아예 남의 일처럼 생각하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불안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들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이번에 읽게 된 도서`9번의 일'(김혜진 저)은 이런 생각들을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하게 해준 아주 고마운 도서였다.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0년 넘게 근무해 오던 주인공 `그'는 회사가 민영화되면서 인원 감축을 하는 과정에서 낮은 성과로 평가되어 권고사직을 받지만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회사에 남고자 하는 인물이다. 아들의 학자금, 집 대출금, 장인의 병원비 등 주변 상황은 그를 그만둘 수 없게 만들었고 회사가 주는 굴욕감과 수치심 등을 이겨내고 버티고 또 버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주변의 모든 관계가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채 하루하루 버티면서 단지 돈만 벌고 있을 뿐이었다. `9번의 일'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진 삶뿐 아니라 그 주변에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삶의 치열한 현장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시점에서 실무적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중년의 경력을 지닌 일꾼들도 반강압적으로 물러나야 하는 현실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진실로 다가왔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은 특별한 삶이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 아버지의 삶이었고 우리 주위 흔하게 볼 수 있는 삶의 모습이었기에 일을 통해 무너져가는 모습은 어쩌면 나에게도 있을지 모를 그런 공포로 다가왔다.

이 도서의 문장은 너무나도 단순하였지만 읽는 내내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일이 과연 나에게는 무슨 의미인지, 왜 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수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답을 찾기란 어려웠지만 회사에서도, 사람들 속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고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실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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