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길
순례의 길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0.05.0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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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순례길 위에 있었던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순례자로 걸었던 시간은 고작 3개월이었는데, 지금도 순례를 꿈꾸며, 길 위의 새벽바람을 그리워한다.
얼마 전 청강 중인 선생님 수업에서 KBS 다큐멘터리중 ‘순례의 길’ 편을 볼 기회가 있었다. ‘순례의 길’은 중국 쓰촨성에서 티베트 불교의 성지 라싸까지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하는 여행자 5명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순례자들은 나무 장갑과 가죽 앞치마를 두고 미끄러지듯이 절을 한다. 이 오체투지는 두 무릎과 손바닥 그리고 이마를 지면과 밀착시키며 하는 절로, 아스팔트 도로는 물론 험한 산길에서도 그들은 온몸을 바닥에 던진다. 성지 라싸까지 가는 동안 필요한 나무 장갑의 수도 50~60켤레라 하니 그 힘든 길, 짐작조차 쉽지 않다.
라싸까지 2천km가 넘고, 하루 5~6km밖에 갈 수 없으니 6개월이 넘게 걸리는 그 길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길이다. 한 순례자가 그 길을 걷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어려운데,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라싸로 순례를 가면서 제 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순례길과 비교하자면 3년 전 걸었던 나의 길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오체투지는 엄두도 내지 않았으며, 나무 장갑이나 가죽 앞치마 대신 최신 기술과 소재의 신발과 스틱, 가방을 사용했다. 물론 비슷한 점도 있었다. 바로 2천km! 쓰촨성에서 라싸까지 약 2천km, 부다페스트에서 르?宣?벨레까지 약 2천km. 또 하나 비슷한 것은 왜 걷는지에 대한 낯선 사람들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받을 때, 순례 초기에는 자신 있게 답했었는데, 길이 거듭할수록 목소리는 작아지고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속 서른넷 청년 순례자는 자신 있게 눈을 빛내며 말하고 있었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어려운데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지금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중이라고.
교육부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연기했던 대면 등교를 5월 13일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시작으로 20일, 27일 등 1주씩의 시차를 두고 학년별로 등교를 시작해서 6월 1일에는 전국의 모든 학생이 학교에 가게 된다. 애초 개학일이 3월 2일이었던 점을 고려해보면 72일 만의 등교다.
우리는 왜 이리 학교에 가려고 할까? 미래교육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는 장소로서의 교실이나 학교의 의미는 점점 퇴색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고,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 미래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번 코로나19 확산을 통해 원격 수업은 물론 학교라는 고정된 공간을 벗어난 수업에 대해 여러 시험을 해보았으며, 원격 수업 중 발생하는 장애와 어려움은 빠른 속도로 개선됐고, 콘텐츠와 수업 경험이 쌓여가면서 원격 수업은 교육의 한 축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학교는 여전히 가야 할 곳, 가고 싶은 곳이다.
교육부의 등교 발표를 보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음을 알면서도 순차적인 등교를 결정하고 조심스럽게 이를 실행하는 것, 그것이 학교의 가치를 드러낸다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순례의 가치는 순례하는 그 사람의 행위에 의해 입증되듯이, 학교의 가치는 학교에 가려고 또는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 입증되는 것 아닐까?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수업에서 선생님은 수행의 가치는 수행의 실천에 의해 확립된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가치를 증명한 학교들은 일제히 학생 맞을 준비로 분주할 것이다. 학생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책걸상과 교구들을 깨끗이 닦고, 학생들이 쓸 마스크를 마련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선생님들은 수업을 계획할 것이다. 실천에 의해 가치가 확립된다는 그 말을 몸소 드러내면서 학교는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찰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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