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발칙한 상상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발칙한 상상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4.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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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코로나가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로 야기된 난국은 단순히 의료 대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전 영역, 전 세계에 걸쳐서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풀기가 쉽지 않은 총체적인 난국이다.

세상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간다. 한쪽을 고치면 이에서 파생하는 문제가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난다. 그래서 전면적인 개혁이 어렵다. 마음으로는 다 뒤집어엎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그게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세상 전체를 스톱시켜 놓았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총체적인 정지 상태가 온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확대 재생산해야만 유지되고, 달리지 않으면 서버리는 자전거처럼 항상 달려야만 하며,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도태되며, 금력(力)으로 정치권력도 좌지우지하며,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층차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불평등 체제이다. 윤리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말 바람직하지 않은 체제이며, 비인간화를 가속시켜 사람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를 코로나가 올 스톱시켜버렸다.

자본주의 사회는 많이 써야 잘 돌아간다. 곧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가 미덕이 된다. 욕구가 많아지고 다양해져야 자본주의 꽃이 핀다는 말이다. 욕구는 다른 것들, 다른 사람을 통해 충족된다. 기업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통해 이윤을 추구한다. 사랑, 애정, 성욕은 이성(異性)을 통해 충족되며, 배고픔은 나 밖의 음식을 통해 목마름은 나 밖의 음료를 통해 해소된다.

욕구가 커지고 많아지면 그만큼 타자의 희생이 커지게 되어 있다. 소비가 미덕인 사회는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고자 한다. 욕구를 최대화하고 그걸 최대로 실현시킨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최대화 하는(maximize) 체제이다. 살려면 다른 것을 먹고 마시고 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나의 욕구가 커지면 보다 많은 타자를 이용하거나 희생시켜야 한다. 많이 먹으면 많은 생명체가 죽어야 한다. 자기를 위해 타자를 이용하거나 희생시키는 사회체제의 병폐에 관해 서양의 철학자들은 전(前) 세기부터 경고를 해왔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이 있다. 없는 욕구도 만들어 소비하게끔 한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필요하지 않았는데 생산을 해놓고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하고, 그것이 없으면 못 사는 상품이 된다. 꼭 필요했던 게 아닌데 어느새 생필품이 된 것이다. 코로나가 스톱시킨 사회체제에서 살아가면서 생각해보니 예전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이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좀 심심하기는 하지만 그게 내 삶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필품 중에서도 꼭 필수적인 것이 아닌 게 많다는 말이다. 조금 덜 먹고 마시며, 덜 놀아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소비를 좀 줄이면 타자의 희생도 줄어들게 되어 있다.

살려면 다른 것을 먹어야 하고 다른 사람도 활용해야 하지만 가급적이면 타자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사회체제를 운영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 최대화하는 자본주의 체제(maximize regime)에 대비시켜 최소화하는 사회체제(minimize regi me)라고 한다.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살면 어떻게 될까? 일단 적게 소비하니 기업의 욕구창출 농간에 말려들지 않아도 된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기업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거대 자본의 형성이 어렵게 되니 자본이 사람을 지배하는 현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욕구나 소비를 최소화하면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현재 전면적으로 스톱된 자본주의 체제를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건전한 체제로 바꿨으면 좋겠다.

/충북대학교 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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