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심는 날
땅콩 심는 날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04.1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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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지난겨울 새로 구입한 밭에 어떤 작물을 심을까 고민을 했었다. 처음에는 과수를 심고자 계획하고 장만한 땅이었으나 소독기나 냉온창고, 관수시설 등 장비와 과수원 조성시설을 새로이 설치해야 하겠고, 또 아무런 과수농사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였으므로 과수원 조성을 포기했다. 과수원은 나무를 심은 뒤 4~5년 후에나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간 투자를 해야 한다. 수종 선택 또한 만만치가 않다. 수확이 괜찮다는 복숭아 사과는 이미 많은 농가에서 경작하고 있어 판로가 쉽지 않고 직거래를 하지 않는 한 가격이 낮아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고심 끝에 고추를 심기로 하고 2월부터 씨앗 싹 틔우기, 하우스 짓기, 묘판 만들기 등 영농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로터리 작업과 비닐 씌우기를 마치고 5월 초 이식만을 기다리던 중 하우스에 보온덮개와 비닐을 여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쪽 묘판에 고추 싹이 70% 잘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노랬다.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잘린 고추 싹이 무더기로 쌓인 곳을 헤쳐 보니 들쥐가 새끼를 달고 있었다. 2천7백 포기의 묘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쥐.

너무도 황당하여 하우스 한가운데 한참을 넉 놓고 앉아있는 중 큰형님이 다른 작물을 해 보자고 제안하셨는데 땅콩이었다. 땅콩. 소득도 괜찮고 판로도 좋으며 다른 작물에 비해 소독도 별로 하지 않아 나처럼 새내기 농사꾼에게 안성맞춤이란다. 땅콩. 땅콩회항 사건이 생각난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륙 준비 중이던 기내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데 이어, 비행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을 하기 시킨 사건이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다준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데 이어,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인 사무장을 하기(下機)시키면서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조 전 부사장의 이 같은 행동으로 당시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250여 명의 승객은 출발이 20분가량 연착되는 불편을 겪었다. 조용히 무마되는 것으로 보였던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땅콩리턴, 재벌가 갑질 논란을 촉발시켰다. 특히 게이트를 떠난 항공기가 다시 게이트로 돌아오는 램프리턴에 대한 항공법 저촉 여부 등으로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었다.

땅콩을 재배키로 결정 한 후 씨앗을 구매해야 했다. 종묘상에 갔더니 씨앗이 6킬로밖에 없단다. 3단보 심는데 45킬로가 들어간다는데 큰일이다. 40킬로를 어디서 구매해야 하나? 이곳저곳 곡물상 뒤져도 1~2킬로 정도밖엔 비축량이 없었다. 충주 청주를 돌아다녀도 살 수가 없어 경기도 장호원까지 수소문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5일장을 거쳐 곡물상을 돌아다니며 간신히 25킬로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고민 끝에 1알씩만 심기로 했다. 본래 땅콩은 한 구멍에 2~3알을 심는 게 정석이다.

드디어 파종일이 돌아왔다. 고추를 심고자 씌워 논 비닐멀칭은 땅콩 전용 비닐이 아니었으므로 구멍을 직접 뚫고 심으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힘든 일을 꺼리는 관계로 대부분 농사일은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쓴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 탓에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므로 농촌에서는 일손부족현상이 심각한 실정이다.

문우 중에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 한 분이 있어 외국인 학생들을 동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아직도 개학을 하지 않아 노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하여 4명을 이틀간 쓰기로 하고 땅콩파종에 들어갔다.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는데 수확까지 얼마나 더 어려움이 닥칠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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