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여인의 원망
봄날 여인의 원망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3.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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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봄은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끝나는 계절이다. 봄의 시작을 봄이 오기 전부터 알리는 꽃이 바로 매화이다. 매화는 눈이 펄펄 내리는 한겨울에 피기 시작하여, 봄이 오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꼿꼿이 지키는 기품 있는 꽃이다. 사람들은 매화가 핀 것을 보고 봄을 느끼곤 한다.

당(唐)의 시인 설유한(薛維翰)도 마찬가지였다.


봄날 여인의 원망(春女怨)

白玉堂前一樹梅(백옥당전일수매) 백옥당 앞 한 그루 매화나무
今朝忽見數花開(금조홀견수화개):오늘 아침 문득 바라보니 몇 송이 피었네
我家門戶重重閉(아가문호중중폐):내 집 대문과 창은 첩첩이 닫아 놓았거늘
春色因何入得來(춘색인하입득래):봄빛이 어디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시인이 기거하는 집은 백옥당(白玉堂)이라고 이름 붙여진 집이다. 택호로 보아, 지체 있는 집안의 아낙이 머무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집 앞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 또한 이 집의 기품을 암시하고 있다.

시인은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형편인데, 평소에는 마당 매화나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매화나무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이유는 밤사이에 피어 난 매화 꽃 때문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던 시인에게 방금 핀 매화 몇 송이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시인의 궁금증이 동했다. 오랫동안 누가 찾아올 일도, 멀리 출타할 일도 없어서 집 안의 문이라는 문은 모두 걸어 잠근 상태였는데, 저 꽃은 어떻게 집 안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시인이 정말 몰라서 이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건만, 꽃 피는 봄이 다시 온 애상(哀傷)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시인의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깊은 산 중에도, 첩첩이 문을 걸어 잠근 집 안에도 봄은 찾아온다. 사계절 중에 가장 고운 봄이기에, 봄이 도리어 아픈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 이런 사람들은 계절의 봄이 어김없이 찾아오듯이, 마음의 봄도 곧 찾아올 것을 믿는다면, 큰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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