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사벽
넘사벽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2.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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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사람이 태어난 이상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안 될 수도 있다.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넘어설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우리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다. 수업 준비를 소홀히 하면 수업을 안 하고 나가버린다든가, 발표 논리가 부실하면 끝까지 엄밀하게 따져 학생들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수업을 마치지 않아 막차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학생들이 선생님을 어려워하고 선생님을 따라하려고 노력하였다. 선생님이 연세가 드셔서 우리와 만나면 하시는 말씀이 있다. 사람은 교육으로 바뀌지 않는 것 같아. 나이가 들어보니 선생님 말씀처럼 교육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교육으로도 바꿀 수 없는 천성이라는 선이 있다.

영화 기생충에는 세 공간이 등장한다. 박 사장 네가 사는 부유한 지상의 공간과 기택의 가족이 사는 가난하지만 어느 정도는 인간적인 반지하의 공간이 있고, 문광(쫓겨난 가정부)의 남편이 숨어 사는 비인간적인 최악의 지하 공간이 있다.

각 계층의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산다. 젊은 CEO인 박 사장은 아래 것들이 선을 넘는 걸 싫어하며, 박 사장 부인(연교)은 아이들 교육에만 신경을 쓰는 단순 성격의 소유자로 부잣집 마나님답게 살아간다. 반지하의 기택 네도 공짜 와이파이를 찾아다니고, 다만 몇 푼이라도 벌면 캔 맥주로 파티를 해가며 인간답게 살아간다. 문광의 남편이 숨어 사는 드러나지 않는 지하 공간? 그건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불가촉천민의 공간이다. 지하공간에서의 삶은 평범한 인간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그에 어울리게 살 동안에는 트러블이 없다. 반지하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지상에 사는 박 사장의 집을 점령하면서부터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박 사장 네의 공간에 스며들어가 본격적인 기생이 시작되면서 왠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 불안감은 박 사장 네가 집을 비우고 기택의 가족이 집안을 통째로 차지하면서 극대화되고, 문광이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부터 그로테스크한 현실로 가시화된다.

문광 부부의 지하 삶을 보는 순간부터 부자의 공간을 차지한 반지하공간의 사람들은 불가촉천민의 공간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게 된다. 반지하와 지하의 사람들은 누가 부자의 공간에 기생할 것인가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며 이 쟁탈전의 결말은 파국이다.

반지하의 인간과 지하의 인간이 벌이는 쟁탈전은 부자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부자의 공간에 얹혀서 살기 위한 투쟁이다. 부자의 공간에 얹혀살면서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파티의 수준을 높이는 반지하의 기택 네는 빈부의 격차를 뒤집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부자의 공간에 스며들어 한껏 고급스러운 체하면서 사는 삶에 만족한다.

부자의 공간에 기생하면서도 넘사벽이 있는바, 자신들이 속한 공간의 냄새이다. 부자의 공간에 스며들어서 부자와 함께 살고 있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반지하의 냄새는 불가촉천민은 느낄 수 없지만 부자들은 아주 쉽게 맡을 수 있다. 이 냄새 때문에 기택은 넘사벽을 느끼고 이 냄새를 맡고 불쾌감을 표현한 박 사장은 기택에게 살해당한다.

개발의 편자, 돼지 목의 진주라는 말이 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나 권한을 차지한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누구든지 자리를 맡게 되면 그에 걸맞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어느 말이 맞을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틀린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능력과 인성이 안 되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면 사람이 이상하게 바뀌는 것 같다. 심지어는 우스꽝스러워지는 것 같다.

넘사벽이라는 말은 함부로 쓰면 안 되지만 사람은 제 분수대로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뜻이라면 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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