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오셨습니까?
편하게 오셨습니까?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20.02.0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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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탈 때면 아주 짧은 순간 긴장을 한다. 다행히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기사님도 친절하게 인사하며 맞이해주셨다. 하루 일을 잘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의 마지막 5분여 길을 기분 좋게 출발하였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기사님이 손주를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동의도 기다리지 않고, 어떻게 보여주려는지 상상할 새도 없이, 기사님은 운전대 위에 세워놓은 핸드폰을 몇 번 터치하셨다.

두어 살 정도 된 아기가 두 손으로 잔을 들고 앉아있고, 남자 어른이 `건배, 건배'하며 잔을 아기의 잔에 두어 번 부딪쳤다. 영상 속 아기는 `마셔, 마셔'하는 소리에 잔을 입에 가져갔고, `털어, 털어'하는 소리에 잔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아기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른들의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졌다. 아기는 가족의 눈길, 사랑과 행복의 중심점이었다. 어른들의 짓궂은 농간에도 최선을 다하느라 아기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기사님도 웃음이 끊이지 않으셨다. `터치, 터치' 손길에 따라 영상은 계속 반복되었다. 오늘 친구 모임에서 보여줬더니 손주한테 별걸 다 시킨다고 한마디 들으셨단다. 그런 사건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아무리 누가 뭐래도 손주가 너무 귀엽다는 자랑이었다.

나는 뭔가 마음이 복잡해져서, 지금은 귀여울지 몰라도 중학생 정도만 되면 후회하실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기사님은 내 반응이 재미없었는지 감탄 어린 혼잣말을 몇 번 더 하시고는, 이번에는 핸드폰의 숫자 4개를 터치하였다. 자동으로 열 한 개의 번호로 연결되더니 저쪽에서 오는 음성이 들렸다. 오늘 저녁은 함께 먹지 못하겠다는 대화였다. 통화는 간단했고, 그사이 내게 위험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전화선 너머의 택시 기사님도 운전 중인지는 모르겠다.

택시를 탈 때마다 떠오르는, 내게 기준이 되는 기사님이 있다. 20여 년 전, 광주에서 택시를 탔는데, 제법 나이가 지긋한 기사님이었다. 광주에서 택시를 탔을 때 대부분 기사님은 타지에서 온 손님을 바로 알아보고, 지역을 물어보고 진한 사투리로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낯선 표현들이 흥미롭고 그 지역 소식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 기사님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밤이었고 조금은 한적한 곳을 가고 있었는데, 간혹 속도를 늦추어 부드럽게 턱을 넘는 것이 느껴졌다. 목적지에 닿았을 때 기사님이 먼저 내려서 문을 열어주셨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딱 한 말씀, 이것은 뚜렷이 기억한다.

`편하게 오셨습니까?'

작은 충격이었다. 조금 심심하고 서운하던 내 마음이 그분의 격으로 채워졌다. 손님으로서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손님을 맞을 공간을 깨끗하고 관리하고, 인사로 정중하게 맞이하고, 요금 계산을 하고 나서도 인사를 잊지 않는 것이 `영업인으로서의 자세 기본 세트'라고 생각한다. 손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역 정보나 재미있는 얘기도 좋은 부가 서비스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핵심은 손님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에 모셔다드리는 일이다.

나는 광주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의 마지막 인사말을 종종 생각하며 모든 일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가족,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오늘 핵심을 잃은 건 나였다. 운전 중에 핸드폰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정중히 말했어야 했다. 택시를 탄 5분 동안 승객으로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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