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편지 고별사
목요편지 고별사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12.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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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오늘부로 `김기원의 목요편지'를 접습니다. 지난 6년 동안 한 주도 거름 없이 줄곧 연재해왔던 터라 별리의 아쉬움이 자못 큽니다.

하지만 접을 때와 내려놓을 때를 알고 이를 행하기에 애써 웃으며 안녕을 고합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참 운도 좋고 복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스펙과 경륜은 물론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데도 필자를 믿고 지면을 맡겨준 충청타임즈와 알량하기 그지없는 글임에도 독자제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격려와 성원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하여 그 고마움과 감사함을 뼛속 깊이 새기며 이 편지를 띄웁니다.

먼저 연유를 밝히는 게 도리일 것 같아 고백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연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시력의 급격한 저하입니다.

하 세월을 살면서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보고 살았으니, 보고도 못 본 척한 게 너무 많으니, 안 보고도 본 것처럼 행세한 것 또한 적잖게 있었으니 눈이 온전할 리 없지요.

마음의 창인 눈이 엉망인지라 자수(수술)하여 광명을 찾은 다음 일정기간 자숙하려 함입니다.

둘째는 충전이 필요해서입니다.

짧은 지식과 좁은 시야와 용렬한 필력으로 너무 많이 쓰고 말하였습니다. 4년간은 목요편지를 포함해 일주일에 두 편의 칼럼을 써 댔으니 과부하에 걸린 거죠.

충전은 하지 않고 방전만 해댔으니 자업자득이지요.

셋째는 본업인 시에 보다 더 충실하기 위함입니다.

명색이 시인이라는 작자가 시처럼 살기는커녕 몇 년간 변변한 시 한 편 못 빚고 산 데 대한 때늦은 반성과 후회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여행도 하고 힐링도 하고 사색도 하며 뒷전으로 밀어났던 시와 친근하게 지내고자 함입니다.

이런 연유로 매주 보내던 목요편지를 예서 중단하고 내년부터는 격주로 `김기원의 단 말 쓴 말'이라는 제하의 칼럼으로 찾아뵙고자 하니 널리 혜량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각설하고 닷새 후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9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2019년과 함께 했던 세상 사람들도 덩달아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되겠지요.

나이. 살아보니 참 공평한 게 나이입디다. 권력자든 재벌이든 예술가든 그 어떤 사람이든 해가 가면 예외 없이 나이 한 살을 더 먹고 그 누구도 늘어나는 나이테를 막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요. 싫다고 안 먹고 좋다고 더 먹을 수 없는 게 나이입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욕심 없이 사는 민초들이, 남과 더불어 사는 선남선녀들이 권력자나 재벌보다 더 건강하게 나이를 먹고 행복하게 산다는 사실입니다.

더 많이 웃고 살고, 그들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사니 당연지사입니다.

아무튼 세상사와 인생사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긍정의 눈으로 보면 고맙고 아름답지 않은 게 없고, 부정의 눈으로 보면 밉고 추하지 않은 게 없음입니다. 그렇듯 긍정은 사랑을 낳고 행복을 낳는 원천이며 삶의 활력소입니다.

비록 졸필이긴 해도 그간 제가 보낸 목요편지는 이런 긍정을 길어 올리려는 간절한 몸짓이었고 기도였습니다.

하여 이런 제 마음이 독자들 가슴에 스며들어 가정과 삶의 현장에 감사와 사랑의 지평이 한 뼘이라도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며칠 후면 도래할 2020년은 숫자적으로도 매우 멋지고 유의미한 해입니다. 청춘이자 성인을 의미하는 20이라는 숫자가 연거푸 있으니 참 좋은 해이지요.

그런 해인 만큼 경자년 새해는 우리 대한민국이 20대의 젊은 패기와 혈기로 숱한 난제들을 정면 돌파하고 세계 속으로 우뚝 섰으면 좋겠습니다.

좌와 우로 갈라진 국민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격양가를 부르는 참 좋은 해이기를 소망하며 펜을 놓습니다.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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