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과 독수공방
겨울밤과 독수공방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12.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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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엄동설한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한겨울을 말한다.

추운 날씨로 말미암아 겨울나기는 그 자체로 힘겹지만, 여기에 근심이나 외로움 같은 정서적 한기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될 것이다. 한겨울의 긴 밤을 사랑하는 가족과 그것도 남편과 떨어진 채, 냉기가 흐르는 텅 빈방에서 지새는 젊은 아낙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조선(朝鮮)의 시인 이옥봉(李玉峰)의 시를 보면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방의 한(閨恨)



平生離恨成身病(평생리한성신병) 평소 헤어진 한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주불능료약불치)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衾裏泣如氷下水(금리읍여빙하수) 이불 속 눈물은 얼음장 아래 물과 같아

日夜長流人不知(일야장류인부지) 밤낮을 끊임 없이 흘러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네





한 번 마음에 들어온 고민이 그대로 눌러앉아 있으면, 한(恨)이 된다. 잊혀지지도 않고 풀리지도 않은 채 사람을 짓누르는 것이 바로 한이라는 것이다.

시인에게도 한이 있었으니, 바로 이별의 한이다.

이별은 슬픈 일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한은 아니다. 이별이 오래도록 지속되어 재회의 가망이 없다고 느낄 때, 그것은 한으로 고착되고 만다. 시인은 이러한 이별의 한으로 말미암아 몸에 병이 생기고 말았다.

병은 원인을 찾아 그것을 없애야 낫는 법이다. 시인의 병은 이별의 한이 원인인데, 그것을 없앨 방법이 없다. 웬만한 근심 같으면, 망우물(忘憂物)인 술 한 잔에 잊을 수 있으련만, 시인의 근심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약이라는 약은 다 먹어 봤지만, 치료가 되지 않는다. 역시 이별이라는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술로도 약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병이니, 달고 살 수밖에는 없다.

낮 동안은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지만 밤이 되어 이불을 펴고 그 속으로 들어가면 참았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지고 만다.

겨울의 차가움과 긴 밤은 시인의 외로움을 극대화시킨다. 그래서 시인이 흘리는 이불 속 눈물은 마치 얼음장 아래를 흐르는 물과 같다. 흐르긴 흐르지만, 흐르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데서 시인의 한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겨울 밤은 춥고 길다. 하지만 그것은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외로움과 이별의 한이 겹친다면 견디기 어렵다. 그럴 때는 울음이라도 터뜨려야 한다.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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