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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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우리에게는 정(情)이란 문화가 있다. 법이 냉정하다면 정은 따뜻하다. 법보다 한량없이 위대한 것이 정이 아닐까? 법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외적 현상이라면, 정은 인간미가 가미된 내적인 현상이다. 어느 것 하나 저버릴 수 없지만, 점점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 날씨마저 추워지니 온정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누구를 도와주려고 해도 자칫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 내밀던 손도 움칫하는 세상이다. 이웃을 잘 만나야 살기 좋은 마을이 되는 지당한 말씀 앞에 아파트 생활은 사람들의 소통이 고픈 세상이다. 아파트 주민들과 소원하지만, 집 주위 상가 사람들과 대면할 기회가 많다.

며칠 전 진열대의 티셔츠가 저렴해 사와 보니 실밥이 나와 있어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올이 쫙 풀렸다. 집에서 꿰맬 일이 아닌 것 같아 수선집에 갔다. 아저씨는 재봉틀로 드르르 몇 번 하시더니 다른 한쪽까지 수선해준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재봉틀로 잠깐 손본 것이니 그냥 가란다. 역시 가게 이름답게 “명품수선”집이다. 아무리 돈을 주려고 해도 기꺼이 거절한다. 사라진 보너스 봉투를 오랜만에 받아 보는 기분이다. 정에 약한 내가 그냥 돌아서기가 난무하다.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을 사다 줬더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되레 미안해한다.

손빨래가 어려운 옷들은 세탁소에 맡긴다. 집 앞에 있는 세탁소는 대형 세탁소보다 좀 비싸다. 대형점에서 4,500원 하는 양복 한 벌이 집 앞 세탁소에는 7,500원이다. 대형점에는 가끔 20~30% 세일도 하지만, 집 앞 세탁소는 365일 항상 금액이 일정하다. 다른 집에 비해 별로 애용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찾으러 가지 않으면 절대 갖다주지 않는다. 한때 없어진 옷이 있어 혹시 세탁소에 있겠다 생각하고 갔더니 맡겨놓은 옷이 없단다. 어쩌다 옷이 안 보이면 확인 영수증도 없이 거래하는 세탁소를 살짝 의심하면서 대형세탁 점을 이용한 적도 있다. 다소 불만족스럽더라도 집 앞 세탁소를 이용하는 편이다. 좋은 점은 가끔 떨어진 단추를 달아줘 그럭저럭 이용할만하다.

치아 교정이 끝난 다음 와이어를 치아 안쪽에 부착하고 있다. 앞니다 보니 부착한 부분이 자주 떨어진다. 유효기간이 1년이라고 하지만, 하나 떨어지면 2만 원이니 그 돈도 만만찮다. 오늘은 위에 붙인 부분이 불편해 갔더니 처음에는 하나라고 하더니 때울 때는 4개라고 한다. 언제 붙였냐고 했더니 서비스 기간에서 이틀 지났단다. 예약이 차 있어 이틀 뒤로 미룬 것이다. 따지고 보면 휴일이 1년째 된 날이었다. 진행 과정을 이야기했더니 치료받는 날짜로 계산하니 어쩔 수 없단다. 억울하지만 8만 원을 지급하고 나오는데 윗입술 부분이 뭐가 묻은 느낌이라 물었더니 치료 도중에 뜨거운 것이 닿아 그러니 며칠 있으면 괜찮단다. 집에 와 거울을 보고 상처가 신경 쓰여 전화했더니 며칠 있으면 괜찮다는 말과 아프면 약국에 가서 약을 사 바르란다. 교정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늘 안 내도 될 돈을 낸 것 같아 억울한데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늘어지는 변명에 화가 났다. 멀리 가는 것이 귀찮아 동네 병원을 이용한 결과다.

상점이나 병원이 마을에 있어 참 편리하다. 고객을 상대로 밥 먹고 살기에 서비스가 좋은 곳에 마음이 동한다. 대형 백화점의 서비스 정신을 동네에서 찾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전문 의사도 아닌 간호사들이 치료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괜히 건드려 돈만 착취당하는 기분이라 씁쓸하다. 동네에 있어 안 갈 수도 없고 불만족스럽지만 편리함 때문에 이용하게 된다. 이익 추구보다는 친절과 따뜻한 정이 오가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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