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의 맑고 곧은 기개를 실천한 공간, 옥천 양신정(沃川 養神亭)
청백리의 맑고 곧은 기개를 실천한 공간, 옥천 양신정(沃川 養神亭)
  • 김형래 강동대교수
  • 승인 2019.11.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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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김형래 강동대 교수
김형래 강동대 교수

 

옥천의 신라 때 이름은 고시산군(古尸山郡)이며, 조선 태종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옥천은 서울에서 경상도로 향하는 길목이어서 예부터 사신과 여행자들의 왕래가 많았다. 현재의 이원면 원동리 금강변은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큰길에 위치하여 적등진(赤登津) 나루가 있었고, 인근에는 관급여관인 적등원(赤登院)이 있어 관리들과 행인들이 쉬어갔던 곳이다. 그 옆에는 적등루(赤登樓)라는 누각이 있었는데, 조선 세종 때의 명문장가인 서거정은 『적등원루기』에 “옥천은 남쪽 지역의 집중지이다. 서울로부터 충청도로 가고, 충청도로부터 경상도로 가는 길목이어서, 사신과 여행자들의 왕래하는 말굽과 수레가 날마다 서로 연이어 있다.”라고 썼다. 이를 통해 이 지역이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학자 남수문(南秀文)은 『옥천향교기』에서 옥천을 “산은 높고 물은 맑으며, 땅은 기름지고 물산은 풍부하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들은 너무 메말라 논의 수확은 적고 주민들이 오직 목화 심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땅이 목화 가꾸기에 가장 알맞다.”라고 기록하여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지금은 목화 대신 포도와 감 그리고 묘목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옥천 양신정 (沃川 養神亭)은 동이면 금암리 새말 앞 경부고속도로가 바라다보이는 낮은 야산 정상에 남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양신정(養神亭)은 1545년(인종 1)에 전팽령(全彭齡, 1480~1560)이 밀양부사로 있다가 물러나 쉬면서 글 읽는 곳으로 건립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전팽령이 상주목사로 재직 시 청렴 근실하게 고을을 다스려 청백리의 별칭인 염근(廉謹)에 선발되어 통정(通政)에 가자(加資)되었으며, 은퇴한 뒤에도 청렴하게 산 까닭에 곤궁하여 끼니를 챙기지 못하므로 아들 전엽(全燁)이 효성스레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마을 앞에는 전엽(全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명종 12년(1566)에 세운 효자각이 있고, 그 뒤쪽으로 길게 늘어선 구릉에 옥천전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병화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20년(광해군 12)에 다시 지었으나 1733년(영조 9)에 무너져 없어졌었다. 지금의 정자는 1828년(순조 28)에 다시 건립하였다. 이 정자를 처음 건립하였을 때의 사정을 전하는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양신정기(養神亭記)”가 남아 전해 온다.
현재의 양신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구성은 서측으로 2칸의 온돌방을 두고 동측으로 4칸의 우물마루를 설치하였다. 주위로는 토석담장을 두르고 남쪽과 북쪽 중앙에 협문을 내어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자를 세우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풍류를 즐기기 위한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 연마와 수양, 강학을 위한 경우이다. 양자를 구별하는 데에는 담장과 출입문 그리고 온돌방의 유무가 기준이 된다. 풍류를 목적으로 하는 정자는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있으면서 사면이 활연히 트인 구조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작은 방이 딸려 있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나, 그것은 추위나 궂은 날씨를 잠시 피하기 위한 시설일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문을 통해 드나들게 되어 있으며, 정식 온돌방을 갖춘 구조로 미루어 볼 때, 양신정은 풍류만을 위해 지은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자 이름인 ‘양신(養神)’은 명성과 이익을 쫒지 않고 물러나 조용히 자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한다는 뜻이니, 정자의 이름을 통해 곧 주인의 성품과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젊을 때는 세상에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펴고, 늘그막에는 전원에서 늙는 것도 잊고 한가로이 은일한 정취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만족스러운 삶이 또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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