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들었어요
단풍 들었어요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3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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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솔향을 담은 알싸한 바람과 맑은 공기, 죽계천이 흐르는 소수서원을 둘러보고 풍기에서 예천으로 가는 길이다. 온 산이 울긋불긋하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단풍인지 사과인지 분간이 안 된다.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가던 길을 돌렸다. 산 고개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은빛과 붉은빛으로 산비알이 환하다. 사과나무 밑에 깔아놓은 은박 매트가 햇빛을 받아 사과 배꼽에 적중하니 사과가 부끄러워서 빨개졌다. 사과와 단풍이 어우러진 전경을 놓칠 수가 없어 셔터를 꾹꾹 눌렀다. 소수서원 주차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영주사과축제가 휴일과 맞물러 인파로 북적거리는 서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업무차 서원에 갔는데 담당자와 소통 부재로 일이 빗나가는 바람에 머리가 아프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서는 안 될 것 같아 상대에게 배려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개운치가 않다. 가능한 양보 하거나 배려하는 것이 꼭 능사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통으로 빚어진 일로 멋진 자연이 무색하게 되었다. 자연과 정신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라 마음을 달래고 달랬다. 오늘의 불통이 어쩌면 나를 한층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불통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인공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멋진 서원에서 마음 다스리기 연습하고 가는 길이다.
말끔히 잊어버리기 위해 국도를 탔다. 길치이지만 내비게이션을 무시하고 어림짐작으로 운전을 했다. 풍기에서 예천이라는 안내판만 믿고 달렸다. 혼자 잘 다니는 것은 내 마음대로 자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롯가에서부터 산비알이 온통 사과밭이다. 사과는 단풍과 어우러져 소백산 자락에 풍경으로 걸려 있다. 단풍과 사과와 눈 맞춤이 길어지면 질수록 내 가슴에도 고운 빛이 서리는 것 같다.
문경새재로 가는 길에 문경사과축제 푯말이 친절하게 관객몰이를 한다. 차를 축제장으로 돌렸다. 30분을 제자리걸음 하다시피 하다가 방향을 휴게소로 돌렸다. 휴게소도 주차할 자리가 없다. 빙글빙글 돌다가 겨우 주차를 시켰다. 이곳에서 축제를 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인파 속에 동행했다. 친절하게도 문경시에서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하고 있었다. 사과축제는 문경새재 제1관문 잔디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새재 올라가는 길, 양쪽 부스 아래서 사과들이 길손을 향해 ‘저 어때요’하며 선을 보인다. 눈인사로 답례하며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어둠이 금세 산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봄에는 꽃구경 나온 상춘객으로, 가을에는 단풍 구경 나온 상춘객들로 계절마다 알록달록하다. 자연에 뒤질세라 지자체에서 기회는 이때다 해서 농산물을 앞세워 문화행사가 방방곡곡에서 열린다. 지역마다 어떤 행사를 어떻게 홍보하느냐에 따라 지역 경제가 직결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혼자 왔다가는 나만 하더라도 사과 두 상자와 숙박, 식비 등 쓰고 가는 돈이 수월찮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환산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지리적 특징과 지역적으로 유무형 문화재가 있다. 다니다가 보면 지역과 어울리지 않은 행사를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인들이 있다. 문화와 예술, 자본이 함께 움직이는 시대, 지역적 특징을 잘 살린 프로그램과 특산품을 잘 활용한다면 성공할 것이다. 여기에 안내자와 상인들의 서비스 정신이 곁들여진다면 관객몰이는 신경 안 써도 된다. 사람들의 입소문은 단풍보다 훨씬 빠르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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