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산에 장애물이 있다
구룡산에 장애물이 있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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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오늘 산행은 내게 있어 아주 특별한 날이다.폐쇄 위기에 있는 구룡산을 아들과 걷고 있다.

자연이 준 선물을 아이가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겨우 설득해 함께 오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오늘은 평상시 내가 다니던 길을 걸으며 이곳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조물주가 자연스레 창조한 구룡산을 마음 놓고 다닐 수 없게 된 일이나 마른 명태같이 말라 있는 아들에게 가을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어미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매한가지다.

자연도 인간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올라가는데 `아름다운 구룡공원은 토지주가 지켰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존중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라'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철삿줄에 단단히 묶여 길을 가로막는다.

장애물 앞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가 발길을 옮겼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이 어떻게 대처는 지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일본인은 장애물을 차분하게 읽은 다음 발길을 돌릴 것이고, 중국인은 장애물을 부수고 지나갈 것이고, 한국인은 장애물 중간을 헤치고 빠져나가거나 옆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가 현수막 앞에 다다른 것은 10월 10일 아침 8시 40분이다. 며칠 전에 10월 10일부터 구룡산 일부를 폐쇄한다는 현수막을 봤기 때문에 어쩌면 구룡산을 못 오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잠깐 다니러 온 아들을 애써 데리고 온 것이다.

우리의 추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장애물을 묶어놓은 나무 옆으로 이미 길이 나 있었다. 조금 가다가 보니 많은 사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상시대로 걸어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구룡산은 산남동, 성화동, 개신동, 수곡동 주민들의 심신을 달래주는 산이다. 일명 청주의 허파라고도 한다. 산세가 완만하며 나무와 숲이 우거져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우리 집에서 구룡산을 다녀오는 시간이 대충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길이라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강아지도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좋아서 폴짝폴짝 뛰는 곳이다.

반질반질한 산허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구룡산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는 산남동에 살다가 보니 구룡산 개발은 남의 일이 아니다.

청주시는 청주시대로 행정에 따른 절차가 있을 것이고, 토지주는 토지주대로 사연이 있을 것이고, 환경단체 또한 그 나름대로 할 말이 있겠다 싶어 주민의 한 사람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있다면 평상시 내가 다니는 길과 나무와 풀과 꽃들을 예전과 같이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산에서 바라볼 때 눈앞에 딱딱한 건물이 아니라 푸른 숲과 저 멀리 능선이 보이는 것이다.

이 사태가 여기까지 오는 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길도 있었는데, 결국 피해를 보는 측은 이곳을 즐겨 찾는 주민들이다. 당장 길을 가로막고 있는 현수막이 눈에 거슬리고 언제 폐쇄될지 모르는 길과 숲과 나무가 사라질까 걱정이다. 청주시와 토지주가 잘 합의해서 예전과 같이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게 장애물이 제거되기를 바란다.

“개울과 강에 흐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요,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조상들의 목소리인데 어떻게 돈과 바꿀 수 있느냐”는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이 스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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