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링이 지나간 자리
링링이 지나간 자리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19 1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조금 지난 일이지만 `링링'에 대한 추억이 있다. `링링'이 제주도에 상륙하기도 전에 우리를 긴장시킨 태풍이었으나 매스컴을 뜨겁게 하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화제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매스컴에서 엄청난 위력을 몰고 온다기에 나는 방송의 지시에 따라 문을 꼭꼭 잠그고 귀한 손님을 기다리듯 창밖을 내다보며 `링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마치 지키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날 것 같이 엄포를 놓는 태풍, `링링'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팽그르르 돌다가 나도 모르게 콩콩이를 타고 통통 튀어 올랐다. `링링'이 내게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어가 주는 어감(語感)에서이다.

`링링'은 “링”이라는 세 개의 음소로 이루어진 한 음절에 음성모음 하나, 유성음 두 개가 리듬감 있게 톡톡 뛰고 있다. 링에 나타나는 음운현상은 모음 “ㅣ”는 한때 중성모음이었다가 현대에 와서는 어둡고 무거운 음성 모음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오늘은 밝고 리듬감 있는 양성 모음으로 자리이동을 시키고 싶다. 거기에 의성어나 의태어에 많이 나타나는 비음 “ㄴ, ㅁ, ㅇ”과 유음 “ㄹ”이 어우러져서 그런지 태풍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한량없이 귀여운 존재로 에지 있게 다가온다.

내게 감지되는 어감과는 달리 링링이 지나간 자리마다 과실이 떨어져 뒹굴고 상가 간판이 속수무책으로 바람에 깃발처럼 나부꼈다. 링링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마치 피해조사단원이라도 된 양 길을 나섰다. 간밤에 전쟁을 치른 듯 거리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잎사귀들, 산딸나무 열매, 명자열매 등이 떨어져 카펫을 깔아놓았다.

구룡산도 다를 바 없이 부러진 밤 나뭇가지와 개암 나뭇가지가 너부러져 있다. 나뭇잎과 밤송이들이 숲인지 길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이 떨어져 있다. 정상 능선에 키 큰 상수리나무 세 그루와 소나무 두 그루가 부러져 누워 있다. 이상하게도 키가 작은 나무들은 아무 이상 없는데 키가 큰 나무가 왜 부러졌을까?

가까이 가서 보니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것과 밑기둥에 벌레가 먹은 흔적이 보인다. 바위에 용을 쓰며 뿌리를 내리거나 속앓이를 하면서도 키를 키운 나무들이다. 내실을 튼실히 하지 않으면 쉬이 무너지는 지당한 원리를 읽는다. 능선을 따라 걷다가 발길을 돌린다.

간밤에 시끄러웠던 태풍은 자취를 감추고 생명 있는 것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쓰러진 나무 아래는 여리고 키 작은 달개비 꽃과 애기똥풀 꽃, 나팔꽃들이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해맑게 웃고 있다. 산언저리에 과연 으뜸인 것은 무궁화다. 어찌나 선명한 빛을 내는지 가슴이 뭉클했다. 하산하는데 할머니께서 일러주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얘야 너무 서두르거나 앞서가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할머니 말씀을 새기며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며 생각한다. 부러진 키 큰 나무들은 주위에 있는 나무들보다 햇빛을 한 줌이라도 더 많이 받으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비단 나무뿐이겠는가?

우리는 경쟁 시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남들보다 앞서려고 한다. 선의적인 경쟁보다는 목적을 향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더러 있다. 잘못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기 마련이다. 굳이 밝히려 하지 않아도 우리 심장에는 법보다 더 위대한 양심이라는 무게가 저울질하며 뛰고 있기에 질서를 잡아간다. 링링이 지나간 자리 자연은 건강한 모습으로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도 부패한 것은 빨리 정리되어 질서를 잡았으면 좋겠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부정과 부패를 일삼다가 보면 자연까지 오염된다. 가끔 우주는 우리에게 자연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배우라고 경종을 울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