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첫 사람들
보은의 첫 사람들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9.09.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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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1981년 가상의 인물인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다. 모험영화인 동시에 영화의 주인공이 인디아나 존스이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이 고고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영화 속의 모험과 탐험, 진귀하고 값진 유물들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고학이 인디아나 존스와 같이 낭만적일까? 유적지에서의 고고학 조사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춥고 더운날씨, 비바람과 강한 햇볕을 견디며 온종일 야외에서 흙과 씨름해야 하는 노동, 지치고 힘들 때가 적지 않다. 이런 힘든 야외조사 과정을 거쳐 과거 인류 행위에 관한 물질적 증거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그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인류 역사의 빈공간을 채워나간다. 이것이 고고학이 지닌 매력이다.

최근 보은지역에서 고고학 조사를 통해 그동안 역사의 공백상태로 있던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보은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이 사용한 도구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이 석기이며, 이 석기를 제작하고 사용한 사람들이 보은에 처음으로 터를 잡고 생활한 보은의 첫 사람들일 것이다. 보은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흔적을 2013~2015년 조사하였다.

보은산업단지 조성사업을 계기로 삼승면 상가리유적과 우진리유적 등 2곳의 구석기시대 유적을 발굴조사하였다. 유적은 낮은 구릉사면 끝자락 부분에 남향으로 터를 잡고 형성되어 있다. 삼승면 상가리유적은 주변 지형변화로 구석기인들의 생활면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만 확인되었다. 이곳에 살았던 구석기인은 석영 맥암, 규질암, 사암, 응회암 등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암질을 이용하여 몸돌, 겪지, 여러면석기, 찍개, 긁개 등의 도구를 제작하였다. 이 유적의 형성시기는 약 3만 년 전쯤으로 가늠된다.

삼승면 우진리유적에서는 구석기인들이 일정한 시기차이를 두고 2번에 걸쳐 삶의 터전으로 삼아 생활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첫 번째(1문화층, 약 6만년 전)는 비교적 온난한 기후환경에서 몸돌, 겪지, 망치, 양면석기, 찍게, 긁개, 밀게, 톱니날 등 다양한 석기를 제작, 사용한 사람들이고, 두 번째(2문화층, 약 4만년 전)는 찍게, 긁개, 양면석기, 몸돌, 격지 등의 석기를 제작한 사람들이다. 상가리 유적과 우진리 유적은 보은지역에서 최초로 조사된 구석기유적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크며. 유적의 형성시기는 절대연대값, 퇴적층의 형성시기, 석기구성, 석기제작수법 등으로 볼 때 약 6만년 전(중기구석기시대, 우진리 1문화층)과 약 4~3만년 전(우진리 2문화층, 상가리)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고고학 정보로 보면 보은지역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약 6만 년 전부터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약 4~3만년 전에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음이 밝혀졌다.

이들이 제작한 석기 중 삼승면 우진리유적 출토 긁개, 밀게, 홈 날 석기 등에 대한 쓴자국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석기가 사냥한 짐승들의 가죽을 작업하는 데 사용되었고, 뿔이나 뼈를 다루는 데 사용된 것도 확인되었다. 석기에 남아 있는 쓴자국 흔적, 마모형태, 작업재료의 특징 등을 종합해 볼 때 이들 석기는 비교적 오랜 기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약 6만년 전에 제작, 사용한 석기의 쓴자국 분석결과는 곧 우진리 유적에서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오랜 기간 거주하며 삶을 꾸리었음을 알려 주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이 석기를 만들고 쓴 사람들이 보은에 살았던 첫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날카로운 날과 두툼한 잡이가 있는 석영으로 만든 이들 석기는 자연미가 배어 있어 큰 매력을 느끼게 하며, 보은지역 인류역사의 시작을 알려주는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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