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일본은(2)
내게 있어 일본은(2)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2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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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언어는 입말과 글말이 있다. 아무리 입말이 일회성이라고 해도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한다. 국가나 개인이나 상대에게 자극적인 발언은 가능한 조심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일 관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묘한 기류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미 벌어진 한일 관계는 잘잘못을 떠나 이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이 문제에 있어 현 정부가 지혜롭게 잘 풀어가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뒷받침해 줄 국민의 의식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남의 입담을 지나치게 믿거나 오독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펙트가 아닌 허구로 된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연작하는 사람들이 있어 헛갈린다. 허구가 허용되는 시나 소설, 영화 따위가 아니면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한일 관계의 갈등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을 거론한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단지 필자가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담을 서술하니 판단은 알아서 하시면 된다. 한국어는 영어의 어순과는 달리 서술어가 뒤에 나온다. 세종대왕의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잠시 지난 어느 날 미야자키시로 가 본다.

주인 히로세 할머니는 오사카 출신으로 요리사로 활동하며 아주 품위 있는 여인이었다. 고인이 된 남편은 일본 장교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때 한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며 내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할머니 남편에 대해 많이 궁금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혼고미나미 가다에서 재력가로 소문난 그녀 집은 정원사가 관리했고, 큰 방에는 불당이 있고, 벽 한쪽에는 일본 장교 군복을 입은 할머니의 남편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장교 군복을 입은 히로세 마리코 상의 남편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주인집에 비해 우리 집은 이불을 넣을 수 있는 오시이레가 있었고, 윤동주가 말하는 육첩방(六疊房)과 부엌이 딸린 거실, 직각으로 앉아서 다리를 펼 수 있는 목욕탕과 화장실이 있는 단층집이었다. 마당은 없지만 3평 남짓한 정원이 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한 것은 나무로 지은 오래된 집이다 보니 비가 오거나 날이 궂으면 오뎅만한 달팽이가 등에 달고 다니는 집은 어디 두고 알몸으로 천장과 벽, 바닥에 수도 없이 꿈틀거리며 다녔다. 어느 날은 매미가 날아와 벽에 붙어 울지 않기에 신기해서 잡으러 가니 잽싸게 달아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미가 아니라 바퀴벌레였다. 일본 사람은 작아도 바퀴벌레와 달팽이는 엄청 컸다. 거주하고 있는 미야자키시는 일본에서 남부지역이라 평균적으로 고온다습해서 집안에 곤충과 도마뱀도 자주 놀러 왔다.

미야자키현은 중소도시지만 민간 국제교류가 아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외국인이 오면 팀원이 돌아가며 어려움 없이 정착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줬다. 우리 집 살림은 거의 국제교류원들이 도와줘서 처음부터 크게 불편하지 않게 생활했다. 이들은 지역 소식이나 광고를 통해 쓰지 않은 생활용품을 기부받아 놓았다가 유학생들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직접 전달하거나 축제 때 좌판을 깔아놓고 무료로 가져가게 한다. 또한, 미야자키현에는 한국교류원들이 시와 면 몇 곳에 배치되어 있어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다.

나는 일주일에 3번 일본어 수업을 받기 위해 자전거로 4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빨리 가려고 샛길로 다니다가 좁은 다리 난관에 떨어져 다친 적도 있다. 쉬는 날에는 히로세 마리코 할머니가 공민관에 한국문화와 한국요리 강좌를 열어 나는 졸지에 요리사와 한국문화 전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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