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정 부러운 건
내가 진정 부러운 건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4.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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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인생 2모작을 시작한 지도 5년이 넘었습니다. 아리거나 쓰릴 것도 없는 나이이고 형편인데도 아직도 부러운 게 많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합니다. 부럽다는 건 부족함이 있다는 자기고백입니다. 그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그렇게 살고 싶은 바람이기도 합니다.

살아보니 부러움도 변합디다. 제 부러움의 변천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어릴 땐 친구들의 유복함이 부러웠습니다. 부자 아버지를 두었거나 지체 높은 아버지를 둔 친구가 부러웠고, 멋진 연과 근사한 썰매를 만들어주는 삼촌이 있는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도시락에 계란프라이를 넣어주는 엄마를 가진 친구가 부러웠고, 고무신이 아닌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사춘기가 되어선 친구들의 잘남이 부러웠습니다. 키 크고 주먹 센 친구가 부러웠고, 좋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웅변 잘하고, 예쁜 여자 잘 사귀고, 기타 치며 노래 잘하는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성년이 되어선 잘 사는 사람,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이 부러웠고, 백 있고 인맥 좋아 큰 힘 안 들이고 하고 싶은 일·가고 싶은 자리를 꿰차는 이를 부러워했습니다.

전·월세가 아닌 제 집에서 신접살림을 차린 이가 몹시 부러웠고, 좋은 차 몰고 여행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얘기가 되었습니다만 그땐 정말 그러고 살았습니다. 아니 그 부러움 들을 속으로 삭이며 살아왔습니다. 때론 그 부러움을 시기하기도 하고 적당히 타협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덕분에 삶의 내공이 깊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하지만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부러움은 현재진행형이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부러움이 있다는 건 살아있음의 또 다른 징표라고요. 그래요. 요즘 내 부러움의 실체는 무위와 안식입니다.

아름다운 눈보다 선한 눈망울을 가진 이가 부럽습니다. 그런 눈빛으로 선하게 살고 싶은데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탐욕스럽게 사는 것 같아 야속하기 그지없습니다. 호탕한 웃음보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가진 이가 부럽습니다. 그런 천진난만한 웃음 지으며 살고 싶은데 자꾸만 웃음이 기어들어갑니다.

멋진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부럽습니다. 맺은 인연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부담 없는 사람이고 싶어서입니다. 부자보다 돈 앞에 의연한 이가 부럽습니다.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 최영 장군처럼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권력자보다 권력 앞에서 당당한 이가 부럽습니다. 서슬 퍼런 권력 앞에도 할 말은 하는 곧은 사람이고 싶어서입니다. 거룩한 사제보다 사제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하는 신심이 두터운 평신도가 부럽습니다. 위선과 가식을 벗고 진실하고 진정어린 신자로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죄스럽습니다.

사랑받는 이보다 사랑 주는 이가 부럽습니다. 그동안 사랑 많이 받고 살았으니 이제는 사랑 주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서입니다. 잘난 며느리를 둔 이보다 딸 같은 며느리를 둔 이가 부럽습니다. 내 며느리도 그랬으면 좋겠으나 이 또한 욕심인 것 같아 마음을 비우는 중입니다.

재능이 뛰어난 이보다 덕이 많은 이가 부럽습니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으니 후덕하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존경받는 이보다 사랑받는 이가 부럽습니다. 멀리 있는 존경보다 가까이 있는 사랑이 더 소중해서입니다.

이 밖에도 부러운 게 몇 가지 더 있으나 이만 줄입니다. 이 또한 부질없는 욕심이자 노욕인 것 같아 있는 그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깜이 안 되지만 애써 그 부러움을 지향하며 살겠나이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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