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 만세'를 `대한민국 만세'로 바꾸어 부르자
`대한독립 만세'를 `대한민국 만세'로 바꾸어 부르자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9.03.1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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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 하얼빈 철도역에 내려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발사된 3발의 총탄. 총탄은 정확하게 이토히로부미의 복부에 명중해 열차 안으로 옮겨진 이토는 30여 분 뒤 절명한다.

메이지유신과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면서 수천 년간 좋은 이웃이었던 대한제국을 침략한 주범인 이토를 31살의 대한국의 청년 안중근이 `동양평화'를 위해 침략 원흉의 숨통을 끊어 버리는 순간이다.

안중근 의사는 의거 현장에서 “꼬레아 우라(러시아말로 `대한국 만세')”를 세 번 외치고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됐다.

그 후 안중근 의사는 11월 1일 일본이 관할하는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고, 여기서 11차례 일본 측 심문을 받고, 이듬해인 1910년 2월 7일부터 4일간 뤼순에 있는 일본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열렸고, 2월14일 사형 선고, 그리고 3월 26일 오전 10시에 서거했다. 여기까지가 간략하게 정리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의 역사적 사실이다.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해 KBS에서 `나의 독립영웅이야기'와 `국민과 함께 읽는 독립선언서인 낭독하라 1919! 캠페인'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마치 당시로 돌아간 듯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진지하고도 엄숙한 모습으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모습에서 모든 국민이 함께 함께 읽고, 함께 감동하면서 정신적 가치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마지막 화면에서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생긴다. 아울러 `우리가 아직도 독립을 이루지 못 했나?'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진정한 독립과 3·1정신의 완성은 통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말이다.

안중근 의사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꼬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외쳤다. `대 한국'은 조선의 다른 이름인 `대한제국'을 말하는 것이고, `만세(萬歲)'는 사전에 `오랜 세월' `오래오래 살면서 번영함'대개 상대방에게 오래 살고 잘 되기를 축복할 때 또는 개선 군사들을 환대해 환호할 때 감탄사(구호)로 사용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또 다른 사전에는 `만세는 축복하는 뜻으로 또는 승리를 기뻐하는 뜻으로, 또는 기원하고 염원하는 의미에서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외치는 소리이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왜냐하면 일제에 빼앗긴 대한국의 국권을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서 반드시 독립을 이루어야 하고, 오랜 세월, 또는 오래오래 살면서 끝까지 이루어야 한다는 간절함의 의미로 외쳤던 것이다.

3·1혁명으로 우리 민족은 `백성'에서 `시민'과 `국민'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만들어져 일제 강점기를 끝장내고 광복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이후 100년. 그래서 이제는 통일 대한민국의 100년을 세계 인류의 등불로 우뚝 설 그날을 기원하고, 오래오래 염원하는 의미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것이 어떨까?

“꼬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외치며 동양평화를 염원했던 안중근 의사의 마음으로`대한민국 만세'`대한통일 만세'를 불러보자. 지구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위대한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미래 지향적이고 발전적인 민족의 앞길을 축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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