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영
윤순영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19.01.22 2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가를 말하다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1954년 인천시 강화도 화점에서 유격대 켈로부대 출신의 2남3녀 중 맏이로 태어난 사진가 윤순영. 그는 어려서부터 사구와 습지가 잘 발달한 한강 하구인 김포에서 자연을 벗 삼아 뛰놀며 자랐다. 유달리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사진에 취미를 갖고 자연을 찍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알면서 자랐다.

자연에 미친 그의 열정과 더불어 생명의 가치를 조금씩 이해해 갈 무렵이었던 1992년 김포시 북면동 홍도평야에서 난생처음 보는 생명체를 만났다. 집에 돌아와 조류도감을 펼쳐보니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였다.

1970년 김포시 하성면 후평리와 시암리 한강갯벌에서 2000여 마리가 월동했던 적이 있었던 재두루미가 80년 초의 간척사업으로 먹이가 고갈되자 강원도 철원으로, 일본 가고시마로 월동지를 옮겨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김포시와 환경부 등을 찾아다니며 재두루미 보호방안을 제안했지만 뾰족한 대답을 듣지 못한 그는 결국 사비를 털어 17년 동안 재두루미에 모이 주기, 모니터링, 사진기록, 밀렵감시, 보호 등에 노력했다. 7마리였던 재두루미가 9년 만에 120여 마리로 늘어났고, 그것도 아파트 숲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홍도평야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실에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꼈다.

2002년부터 1년 동안 KBS한국방송과 함께 동아시아 최초로 재두루미 이동경로를 추적하며 탐사했다. 러시아, 일본을 오가며 그들의 모습을 밝힌 작업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비행으로 남아 있다.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재두루미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 때 그들은 언제까지라도 다시 홍도평야를 잊지 않고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재두루미는 몸짓이 60여 가지나 되고, 언어가 다양하며, 성질이 예민해서 그들이 있는 주변 상황을 읽을 줄 알아요.”

하지만 그와 재두루미의 사이는 서로 친근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새가 위험함을 경계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니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오랜 기간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살펴 오다 보니 재두루미와 소통이 잘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진을 찍는 것도 별 어려움이 없어졌다.

그가 사용하는 렌즈가 35㎜ 카메라 렌즈에서 105㎜, 300㎜, 800㎜(다소 먼 곳에서 찍을 때)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성 있는, 조화로움이 살아 있는 재두루미를 찍은 사진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다.

한강하구, 특히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삼각주 일대는 예로부터 많은 수의 재두루미가 활동하였는데, 1975년 천연기념물 제250호로 지정될 당시 2000개체였다. 그 후 한강종합개발사업 등 한강의 급격한 변화 탓에 재두루미의 서식처인 갯벌이 없어지고, 올방개, 매자기, 칠면초, 수송나물 등 기수성 식물군락지가 훼손되면서 홍도평야에는 현재 30개체만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는 재 두루미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 외에 연구하고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신비스런 그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후학들에게 남길 막중한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

“자연의 본성과 순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먼저 자연에 대한 작은 배려가 결국 자연을 살려낼 수 있다는 상식적인 이치로 깨닫고 실천할 필요가 있어요.”

그의 이러한 노력과 실행으로 람사르습지등록의 가능성이 있으며, 환경부와 국토해양부, 교육부의 허락을 받아 시가 1400억원가치 땅 19만평을 확보해 김포를 야생조류의 보호단지로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세계 최고의, 우리나라 최초로 새들의 땅 재두루미 아니 야생조류공원으로 만들 기초가 10% 완성됐다고 말했다.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신념을 갖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붓겠다고 다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