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서 얻는 과거의 정보
땅속에서 얻는 과거의 정보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8.10.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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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켜켜이 쌓인 지층에는 현재까지 잔존한 과거의 흔적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인공유물 및 유구, 자연유물, 퇴적물 등 물질자료로 이루어진 고고학 기록들이다. 이 기록은 과거 인간활동 및 자연환경 변화에 대해 답을 주는 유형적 잔존 증거이다. 땅속 지층 속에 묻힌 과거의 정보를 알아내는 첫 과정이 발굴이다. 발굴은 땅에 일정한 구덩이를 파서 묻힌 흙을 층위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때 층위는 형성된 시대나 환경에 따라 쌓인 현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층위들의 쌓인 순서를 층서라고 한다. 아무리 중요한 유물이라도 층서상 명확한 위치에서 나왔을 때에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층서는 유적의 역사, 일어난 활동, 형성될 때의 환경 및 고고학 기록들 사이의 관련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층 속에는 인간 활동의 결과로 남긴 인공유물뿐만 아니라 짐승뼈나 씨앗, 열매, 견과류 껍질, 종자, 나무, 꽃가루 등 동·식물유체와 같은 자연유물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유기물이기 때문에 보존이 잘 안 되는 특성이 있다. 이들 자료가 유적에 보존된 경우는 탄화되거나 특수한 보존환경에 놓여 있을 때 가능하다. 토탄이 대표적이다. 토탄은 식물유체가 완전히 분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퇴적된 것으로 놀라운 보존력을 지니고 있다. 토탄에는 박테리아가 연조직을 분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토탄을 발굴하였다. 2015년 청주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부지 내의 외북동 유적에서이다. 최근까지 묘목밭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현 지표면 7m 아래에서 토탄층이 확인되었다. 지층의 두께는 약 3m이며 각 층서별 연대측정결과는 510~3,770B.P. 범위를 나타내어 신석기시대 늦은 시기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 약 3,000년 동안에 지층이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토탄층에 대한 다양한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환경과 인간활동을 이해할 수 있다.

지층의 가장 아랫부분인 해발 33.5~34.4m 구간(3,030~3,770B.P)은 하천변에서 자라는 호습윤성(好濕潤性) 수목인 오리나무속·버드나무속 등과 연꽃속·수련속·마름속·물개구리밥속 등의 수서식물, 호습윤성 초본류인 사초과·여뀌속·수영속 등 다양한 꽃가루가 풍부하게 산출됐다. 또한 상수리나무·졸참나무·물푸레나무 등 나무, 도토리와 종자 미상의 많은 열매가 나왔다. 당시의 환경은 온난습윤한 기후하에서 곳간습지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발 34.5~35.3m 구간(2,860~2,930B.P.)에서는 볏과의 꽃가루와 벼 잎의 세포에서 생성되는 식물규소체가 풍부하게 검출되었다. 이 시점부터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이다. 기후는 온난습윤하였음을 알려준다. 당시 선사인들은 구획된 경작지가 아닌 범람원 같은 자연경작지에서 벼농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참나무의 급감은 당시 사람들이 집 건축과 땔감확보를 위한 벌채 같은 인간간섭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한편 담수조류가 검출되어 이 시기에 무심천의 간헐적인 범람이 발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해발고도 35.3~36.2m 구간은 꽃가루 검출량이 급감한다. 볏과 꽃가루와 벼의 식물규소체가 지속적으로 산출되어 벼농사가 지속되었음을 알려준다.

최상부인 해발 36.2~36.6m(510B.P. ~)에서는 소나무·참나무가 풍부해지고, 호습윤성 수서식물이 검출되는 것으로 보아 습윤한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메밀속이 출현하여 주변에서 밭농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속·참나무속·쑥속 등의 급증은 인간간섭의 지표로 알려졌다. 이런 공통적인 특징과 메밀의 출현은 현재와 유사한 환경하에서 인간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음을 이야기해 준다.

땅속에 묻힌 인간이 지나온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우리에게 많은 과거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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