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
사랑과 우정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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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삶과 사랑 그리고 우정, 이것을 규명하는 것은 인류의 숙제이다. 역사 이래 수많은 문학작품의 주제가 되고 또 수많은 종교인과 철학자들이 연구하여 왔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임이 분명하다.

한때 `부활'의 네흐류도프와 카츄사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나 `적과 흑'의 줄리엥 같은 야망에 찬 사랑을 꿈꾸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을까, 또 관포지교와 같은 우정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 청년이 찾아왔다. 자기 생에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한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까지 약속했는데 고민이 생겼단다. 결혼을 결심한 이후부터 그 여자의 과거에 집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녀의 첫 사랑은 누구일까, 나를 만나기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와는 어떤 사이였을까, 저 여자는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혹과 의심의 마음이 일어 이제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나 하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랑이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몰랐다고 한다.

한 후배를 만났다. 귀촌해서 마을운동을 하는 친구다. 자신의 일보다 공동체 일에 더 앞장서서 열심히 일했던 친구다. 그런 그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아 마을을 떠나겠다고 한다. 마을의 젊은 친구들이 모여 마을을 살리기 위해 부푼 희망을 안고 시작한 운동이었다. 짧은 기간에 제법 성과를 내며 다른 지역단체들의 부러움을 사던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이 사람을 갈라놓고 말았다.

남 앞에 나를 내세우길 원하는 과시적 욕망과 앞서서 열심히 일하며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시기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 작동한 까닭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랑 고백인데 가슴이 뛰기보다는 답답했다. 마을 살리기 운동이 우정을 파괴하는 현상을 보며 절망했다. 두 사람을 생각하며 사랑과 우정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랑과 우정은 현상적이다. 누군가가 내 눈앞에, 내 삶속에 들어와야 비로소 시작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사랑과 우정은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있어 무한정 커지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사랑과 우정을 3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사랑과 우정은 있되 자라지 않는 - 즉 생명력이 없는 표피적인 사랑과 우정은 C급이다. 자라서 잎과 꽃을 피우는 - 즉 내일을 꿈꾸게 하는 사랑과 우정은 B급이다. 그리고 잎과 꽃뿐만 아니라 뿌리까지도 튼튼하게 하는 - 즉 내가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과거와 아픔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온전한 사랑과 우정이 A급이다.

사람은 누구나 온전한 사랑과 우정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사랑과 우정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듯하다. 상대방의 과거를 알고 그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친구사이에서도 성과를 나누고 양보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아픔조차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온전한 것을 꿈꾸기보다는 차라리 C급사랑과 우정이라도 잘 지켜야 하는 것인가, 참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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