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지 말고 붙잡지 말고
막지 말고 붙잡지 말고
  •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8.10.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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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래 건강하게 지내다 오거라” 어디서 들어 봄직한 대화 내용이지요. 부모 자식 사이에 만났다가 헤어지며 나누는 보편적인 대화입니다. 헤어지기가 아쉽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상대방이 잘되기를 빌어주는 간절한 기도가 숨어 있습니다.

이 대화를 보면 어디에도 상대방의 앞길을 내가 들어서 좌우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오로지 내가 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올 때는 기쁘게 맞아주고 갈 때도 기쁘게 보내주면서 오로지 상대방이 잘되기를 빌어주는 모습이지요. 그렇다고 연로한 부모님을 고향에 계시도록 하고 떠나는 자녀의 마음이 무겁지 않아 웃는 모습을 잃지 않고 손을 흔들며 가는 것은 아닙니다.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갈 길을 재촉합니다.

세상에는 명절에 너무 힘이 드니까 명절을 없애 달라는 사람들도 있고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명절을 보내지만 명절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명절이 조상께 감사를 올리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그것 또한 일면이라 할 수 있겠지만 명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면 고향을 찾아가 부모님을 뵙는 것이며 흩어져 살던 형제나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다음이 음식을 장만해 조상께 감사를 올리는 것이지요. 음식을 장만해 조상께 차례를 올리는 형식을 빌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격려할 것은 격려하고 어려운 형제의 하소연도 들어주고 서로 간에 함께 살아가는 정을 나누는 것이 명절입니다.

살면서 지치고 힘든 상황을 잠시 내려놓고 그 옛날 추억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면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충전을 하는 명절이 있어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번거롭고 귀찮기만 한 명절이기보다는 명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남이야 명절에 만나든 평소 생활 속에서 만나든 만나는 것이지만 올 때 잘 맞아주고 갈 때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향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마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너는 어디 살고 있냐?”“나는 어디에서 사는데 그간 어떻게 살았어.”그런 얘기들로 밤을 지새우며 긴긴 이야기를 나누지요. 그런 가운데 마음에 새겨진 한마디 “야 그렇게 가까운데 살면서 연락 좀 하지 그랬냐” “그런 네가 먼저 연락 좀 하지! 나는 사는 것이 바빠서 그럴 마음을 못 냈어.”

그래요. 사는 것이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딱히 하는 일은 없어도 옆 사람 돌아볼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다 자기가 맡은 역할이 있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그것을 처리하는 것만도 힘이 듭니다. 그렇게 바쁜 사람을 어떻게 붙잡을 방법은 없습니다.

가려는 사람 못 가게 붙잡는다고 안 갈 것도 아니고 오려는 사람 못 오게 막는다고 안 올 것도 아닌 오고 가는 것은 다 상대방 의지나 진리의 작용이려니 하고서 오직 내 할 일은 올 때는 반갑게 맞이하고 갈 때는 잘 가라고 빌어주는 것이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인 듯합니다.

가야 할 곳은 가보고 만나야 할 사람 만나보고 보낼 사람 보내고 떠날 사람 떠나보내고 원래 살던 식구끼리 남으니 참으로 조용하고 편안하지요. 그 상태가 극락입니다. 누구를 붙잡지 않고 누구에게 매이지 않으며 그대로 두고 자유롭게 있으면 편안합니다. 모두가 다 이 가을 어디에도 붙잡히지 않고 편안하게 보내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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