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연 (良緣)
양연 (良緣)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8.07.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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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을 찾아야 했다. 결혼 후 15년 만의 일이었다. 고민 끝에 찾은 것이 대학 공부였다. 하지만, 남편이 순순히 허락할 리 만무하였다. 모든 일을 변함없이 하고 공부를 하겠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냈다. 일이 하나 더 늘긴 했지만, 행복했다. 가게 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서둘러 저녁을 지은 후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이를 태우고 트럭을 운전해 1시간여를 달려가 수업을 들었다. 힘겨운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혹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거리가 더 먼 곳에서 힘들게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몇몇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인연을 이어나갔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많은 관계 속에서 잠깐의 만남을 끝으로 잊혀 지기도 하고, 때론 지속적인 인연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 관계가 이어져, 일가친척과 혈연보다 더 끈끈한 인연도 만들어진다. 바로 `양연'의 관계다. 아름답고 좋은 인연 `양연', 내게는 그런 인연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중에서 문우의 정을 나누며, 친동기간 이상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두 분의 이야기다.

한 분은 만학의 길을 함께 한 동기생 S, 또 한 분은 만학의 길을 걸으셨지만, 후배인 K. 우리 셋의 공통점이라면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와 수필을 쓰고, 같은 문예지로 등단하여 지금은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 셋은 5년 전부터 남편들까지 끌어들여 부부 모임으로 연을 이어가고 있다. 나이가 제일 어린 내가 십 년 전 등단을 했고, K언니가 4년 전, S언니가 2년 전에 등단했다. 주위에서 우스갯소리로 내가 전도를 잘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각자 노력해온 결과이다. 절심함을 가지고, 쉼 없이 공부하며 많은 습작을 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는 서로 칭찬해주고 축하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남편과 아이들, 친형제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얘기도 우리의 만남에서는 스스럼없이 풀어놓을 수 있다.

얼마 전 수원의 500년 된 느티나무 노거수가 장맛비에 쓰러졌다. 조선 정조 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이 나무의 나뭇가지로 서까래를 만들어 썼을 만큼 그 내력이 깊은 나무였다. 하지만, 나무도 나이를 먹다 보니 공동이 생기고 그 속으로 크고 작은 바람이 오고 갔을 터이다. 그 많은 바람을 맞다 보니 오래된 나무도 결국은 세찬 비바람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으리라 생각된다. 사람은 나무처럼 오래 살지 못함에도 짧은 일생에서 많은 시련과 위기를 맞닥뜨리곤 한다. 그리고 더러 어떤 이의 마음에는 크고 작은 공동이 생겨난다. 나무의 공동을 채워 주는 것이 시멘트라면, 사람의 공동을 채워주는 것은 따뜻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 튼튼하지 않은 내 나무는 자의와 타의로 크고 작은 공동이 생기곤 했다. 만약 내게 이런 `양연'이 되어주는 두 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맑았던 하늘은 금세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또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곁에 따뜻한 `양연'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비가 세차게 내린다 해도 빗속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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