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빵 ‘학자들의 수다’
팟빵 ‘학자들의 수다’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5.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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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팟캐스트라는 말은 다들 알 것이다. 나도 ‘나꼼수’(나는 꼼수다)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잘 듣지 않았다. 재밌다, 웃긴다, 시원하다는 평가보다 내 귀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고물이 된 모양이라고 자책하지만, 관점은 그런대로 들일 수 있으니 그렇다고 너무 고물은 아니다. 변병이나 옹호가 아니다. 제대로 된 고물(古物)은 골동품(骨董品)이 되어 값어치라도 있지, 나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 감히 넘볼 처지가 아니다. 오직 내가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말하는 태도다.

아, 태도를 따지는 것을 보니 정말 꼰대인 모양이다.‘젊은이 말은 좋은데, 그 태도가 무엇인가?’라고 따지는 것은 사실 논리보다 권위를 앞세우는 것이다. 말은 말대로, 다시 말해, 논리적인 것은 논리 속에서, 사실이라는 것은 사실여부로, 잘잘못은 각자의 가치관으로 따지는 것이지 말하는 자세, 표현법, 그리고 삿대질과 같은 몸짓과는 근본적으로 무관한데도 그런 태도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늘 고민한다.

나만 하더라도 손님이 오면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이하게 된다. 내 몸이 그런다. 그런데 젊은 학생들은 그렇지 아니한 것 같다. 군대 다녀온 학생들은 좀 다르긴 하다. 나도 ‘하는 일 바쁜 데 무슨 형식적인 치레냐’면서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게 한다. 그러나 빤하게 의자에 앉아 말을 받으면 좀 민망한 느낌을 받는다.

보직을 할 때, 나는 부하 직원에게 결코 일어서지 말라고 확실하게 말해두었다. 그래서 안 일어난다. 그건 좋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했는데 전혀 모르듯이 일어나지 않을 때, 공연한 ‘선생의 의무감’이 떠오른다. ‘이걸 가르쳐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그러나 말로 가르친다는 것은 몸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못한 법, 조용히 산다. 사실 보여줄 것도 없다.

자유로운 표현, 의사소통, 의견개진, 중간에 들어가는 막말과 같은 감정표현, 이런 것이 인간의 모습이고,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다가온다. 무미건조한 언어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감탄사가 들어가는 언어는 상당히 이해가 쉽지 않은가. 앞선 이야기의 주제나 목적이 분명해지니 말이다.

나는 외국어실력이 국어실력이라고 굳건히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수준을 말하면 그때는 그 외국어의 감정이 느껴질 때 훌륭한 실력이라고 말한다. 글자로 쓰인 책을 보면서도 말이다. 단순한 낱말이 아니라 감정 덩어리로 다가올 때 외국어 입문이 완성되는 것이다.

팟캐스트는 감정이 실려 있어 좋다. 게다가 TV처럼 올인하지 않고 딴 짓을 할 수 있어 더 좋다. 오디오의 좋은 점이다. 게다가 누구나 컴퓨터, 아니 스마트폰만 있으면 들을 수 있다. 오고 가며, 할 일 없을 때 말이다.

광고다. 나도 드디어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팟빵의 ‘학자들의 수다’다. 두 달 전 모임에서 만난 교수가 ‘한국인의 눈으로 본 중국철학사’를 권유해서 벌어진 일이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전문인을 상대한다’고 하니, 나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책으로 내겠다니 본업과도 맞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뒷부분에 진행자와의 대담이 있는데, 내 말을 묻고 따지며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다. 얼마 전 공자를 끝냈는데, ‘논어’가 대화록인 것처럼 팟빵도 대화를 현대적으로 부각시키는 공간임을 실감했다. 순위도 상당히 좋은 편이란다.

공영방송의 ‘명사들의 책읽기’에서는 저자 낭독 때문에 여의도까지 가는 수고를 했어야 했는데, 이건 장비 몇 개 들고 와서 연구실에서 하니 게으른 나에겐 딱 맞다.

나의 수다, 들어보실라우? 꼰대의 ‘자뻑’을 말입니다.

/충북대 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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