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모종
꽃모종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8.04.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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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우리 집은 그리 넓진 않지만 마당이 있어 몇 종류의 동물도 있고, 일반 가정집에서 보기 드문 식물들도 볼 수 있다. 고양이들과 덩치가 작은 개 한 마리, 식물로는 산다래와 산머루가 있고, 집 포도나무 외에도 여느 집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꽃들이 심어져 있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여름이 오면 박가시 나방 몇 마리가 매일 찾아오곤 한다. 그런데 박가시의 몸과 금송화의 색이 너무도 닮아있다. 제 몸의 두어 배는 됨직한 긴 촉수가 아이들의 눈에는 빨대로 꿀을 빠는 듯이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대문을 들어서면 작은 연못도 있다. 그곳에는 금붕어와 민물붕어, 우렁이, 개구리, 달팽이가 산다. 몇 종류의 연도 한 식구다. 멀리 가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자연 생태를 보여주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 바람이 아이들에게 전해졌을까? 어느 날은 갑자기 수업 중에 “선생님, 창문으로 풀이 기어올라 왔어요.” 할 때도 있고, “선생님, 나무가 추운가 봐요. 나뭇잎이 부르르 떨고 있는데요?”라고 할 때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선생님, 눈이 와요. 눈사람은 언제 만드나요?”라고 물어 올 때도 있다. 그런 말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누구라도 그때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의 눈을 보았다면 나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공부에 시들해지는 듯하면 시를 짓게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시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우리 집 동식물들이다.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드는 바람에 앉은 자리가 깨끗한 `청이'는 빗자루를 달고 다니는 청소부로, 창살을 꼭 잡고 교실 안을 기웃거리는 `며느리 밑씨개 풀'은 공부하고 싶어 하는 친구로, 연못 속의 빨갛고 검은 색의 물고기들은 서로 어울려 놀고 있는 다문화 친구들이 되곤 한다.

자연과 아이들의 모습은 흡사하다.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언제나 자신의 주장이 뚜렷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부끄럼을 타서 발표는 잘 못하지만 속은 한없이 깊은 아이도 있다.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하늘을 향해 울울창창 커가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낮은 포복으로 벽을 오르는 식물도 있고, 앉은뱅이 식물은 땅의 기운으로 제 영토를 넓히려 한다. 세상의 식물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듯이 아이들 또한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우리 어른들은 모르는 듯하다. 그동안 우리는 어른의 잣대로, 어른의 틀에 맞춰 세상을 보게 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아이란 창을 통해 자연의 세상을 다시금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마당 여기저기가 온통 꽃모 투성이다. 부러 꽃씨를 뿌린 것도 아니다. 작년 가을, 꽃은 바람이 정해준 자리 여기저기에 터를 잡은 모양이다. 제일 많이 땅 위로 올라온 녀석은 금송화와 과꽃이다. 채송화도 제법 여러 식솔을 거느리고 땅에 바짝 엎드려 오종종하니 모여 있다. 군데군데 접시꽃 싹도 보인다. 해바라기는 올 이른 봄에 뒷집에서 씨를 얻어와 심었는데 많이도 싹을 내밀었다.

이곳이 그리 도시는 아니지만 거반 아이들의 집은 아파트가 많다. 내일은 아이들을 데리고 꽃모종을 해야겠다. 어쩌면 내 욕심이 더 큰지도 모른다. 울타리를 빙 둘러 다투어 피는 꽃도 좋지만, 그 꽃을 보는 아이들 얼굴에 든 꽃물이 더 보고 싶은 것이 이유일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옮겨 심은 꽃모가 자라 층층의 꽃차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좋아할까? 그뿐인가, 그 꽃들을 따라 여름이면 찾아오는 박가시와 호랑나비, 벌들의 향연은 자연이 아이들에게 덤으로 주는 선물일 터이다.

꽃밭에 앉았다. 어느새 나는 꽃모종을 시작하고 있다. 아이들이란 예쁜 꽃모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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