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미리 준비하지
미리미리 준비하지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8.03.12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유의 숲
▲ 백인혁

제가 살던 고향은 두메산골이었습니다. 학교는 읍내에 있어서 먼 길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많이 피곤하고 지친 날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뒹굴뒹굴하다 늦게 일어나 학교 가야 할 시간에 쫓기어 허둥대는 저에게 어머니는 “아이고 좀 일찍 일어나 미리미리 준비하지, 그리 서두르냐”며 저를 가엽게 바라보셨습니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부모님은 한해 농사 준비로 바빠지셨습니다. 논에 퇴비를 뿌리는가 하면 고구마 순을 기르기도 하고 소와 쟁기를 가지고 밭에 나가 이랑을 만들기도 하시는 등 다양한 일들로 하루해가 짧기만 했습니다.

어린 우리는 새 학기 준비에 바쁘거나 새 학기를 시작했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생활의 시작을 대비해 미리미리 준비하여 시작한 친구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데, 준비 없이 시작한 아이들은 날마다 정신없이 학교와 집만 오가다가 한 학기 절반이 지나갈 무렵에야 안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저도 준비 없이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축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미리미리 준비하지 그리 서두르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충격이었던지 그날 이후 저는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하면 미리 준비하는 것을 `철칙'처럼 여기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제비가 날아들었습니다. 제비는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작년에 날아갔던 제비가 다시 왔는지 제비집에 앉아 쉬다 논에 나가 흙과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집을 보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집 보수가 끝나면 알을 낳고 품어서 새끼를 부화시키고 기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짐승들도 다 미리미리 준비하여 살아가는구나!'하면서 저는 우리 어머니 말씀이 지당하다 여기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해보며 그 일에 대비해 준비해 둘 것은 무엇인지 찾아 준비하고 순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검토해 본 사람은 그 일을 당해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고 여유롭게 대처할 수가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든 계속 반복되는 일은 스스로 이제 능이 났다고 생각하며 준비 없이 시작할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실수가 따르고 일이 잘못되어 많은 시간을 더 투자하게 되거나 힘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에 경험이 없으면 긴장해 준비하고 점검하며 심지어는 미리미리 예행연습까지 해두는데, 여러 번 해 본 일이라고 안일하게 준비 없이 하는 경우 꼭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가 있을까.'고민하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꾸어 보면서 해보고 또 해보는 것이 준비하는 것이지요. 필요한 것을 찾아 넣거나 부족한 것을 어떻게든 보충하면서 다시 할 때는 더 완벽하게 해 보는 것이 준비입니다. 이 준비는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만이 잘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여러 방면으로 준비하여 그 일을 했을 때 더 풍성하고 더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긴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새롭게 맞이하는 봄도 많았건만, 지나고 나면 그저 일상에 빠져 봄꽃 내음 한번 맡아보지 못하고 지낸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올봄은 특별히 마음을 챙겨서 살아보시지요. 봄맞이 준비도 해보고 봄과 같이 숨도 쉬어보고, 옷 갈아입듯 변해가는 산하대지 초목들의 삶도 바라보면서 때로는 도도한 철학자같이, 어느 날은 노래하는 새들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를 권해 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